3부 취소된 예약
13화. 손 끝에 남은 온독
수화기를 귀에 붙이자 인사도 없었다.
“6번, 심박 계단이야. 지금 올라와.”
통화는 그걸로 끝났다. 나는 로비 테이블에 놓아둔 휴대폰을 집어 가운 주머니에 넣지 않고 손에 그대로 쥐었다.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올라가는 동안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어 종이 두 장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웠다. 아이 것은 글자 자리만 도톨하게 솟아 있었고 나머지 면은 미끄러웠다. 어제 내가 쓴 A4는 전체가 고르게 미끄럽고 아이 것보다 차가웠다. 두 장의 온도가 손끝에서 따로 만져졌다. 5층에서 문이 열렸다가 아무도 타지 않아 다시 닫혔다.
중환자실 문을 밀자 6번 침대 모니터가 먼저 보였다. 128이었다. 커튼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121로 바뀌었고, 침대 발치에 섰을 때 116이었다. 109가 떴을 때 나는 숫자를 소리 내지 않고 입안에서만 읽었다. 포화도는 89에서 더 오르지 않았다. 산소는 이미 올려놓은 상태였다.
한여순 선생이 수액 라인을 손가락에 감아 정리하고 있었다. 나를 보지 않았다.
“오후 세 시 회의 결과 나왔다. 배제 결정.”
“네.”
“발효는 내일 오전 아홉 시부터야. 인수인계는 아침에 김 선생이 받는다고 하더라.”
라인 클램프를 딸깍 잠그는 소리가 났다. 한여순 선생이 데스크로 가서 서류함에서 종이 한 장을 빼 왔다. 가운데에 접힌 자국이 있었다. 손톱으로 그 자국을 눌러 편 다음 내 쪽으로 밀었다.
“원본은 과에 올라갔고 이건 사본이다. 읽고 확인란에 서명해.”
제목은 담당 배제 통보였다. 그 아래 줄에 소속과 이름이 있었다. 내과계 중환자실 3년차 서지원. 다음 줄은 이랬다. 병동 리모델링에 따라 소아중환자실에서 내과계 중환자실로 임시 통합 운영 중인 6번 병상 환자 백유안(8세)의 담당 의사 배제. 발효 일시는 익일 09시 00분으로 찍혀 있었다. 사유란은 두 줄이었고 조정 절차 진행 중 이해관계, 보호자 요청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손 떨림이라는 말은 없었다.
볼펜을 받아 확인란에 이름을 썼다. 획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게 오늘은 다행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임시 통합이라는 말, 두 달 됐지.”
“두 달 하고 나흘입니다.”
“그럼 넉 달째부터는 저 침대가 위로 올라가고 너는 여기 그대로 남는 거고.”
한여순 선생이 통보서를 도로 받아 반으로 접었다.
“그러니까 오늘 밤은 아직 네 환자다. 네가 뭘 지켰는지는 오늘 밤 안에 정해지겠지.”
나는 반 박자 늦게 알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낮에 여덟 살이 배제가 뭐냐고 물었을 때 아무 말도 못 한 입으로 그 문장을 받았다.
임경아는 보조의자에 앉아 있었다. 발치 선반에 종이컵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비어 안쪽에 갈색 테가 남아 있었고, 하나는 손을 대지 않은 채 표면에 얇은 막이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가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지역 맘카페 게시글이었다. 제목에 병원 이름 앞 두 글자와 중환자실, 그리고 손 떠는 의사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본문 가운데에 커튼 틈으로 찍힌 사진이 있었고 아래로 댓글이 붙어 있었다. 마흔일곱 개였다.
“여기 세 번째 거 보세요. 저 사람 예전에도 그랬다더라, 라고 써 있죠.”
그는 화면을 확대해 그 줄만 가운데에 두었다. 엄지로 아래를 밀자 다음 줄이 올라왔다.
“열두 번째 것도 읽어드려요? 애 부모면 진작 옮겼겠다. 열아홉 번째. 공사 때문에 애들 침대를 어른 중환자실에 붙여놨다던데 거기 그 선생 맞죠, 저희 애 때도 손 떨었어요. 이건 답글이 넷이에요.”
“보호자분.”
“제가 쓴 거 아니에요. 저는 아직 아무것도 안 썼어요.”
임경아가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다.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저는 이거 캡처해서 내일 아침에 낼 거예요. 선생님 조정 있는 것도 다 알아요. 병동에서 다 얘기해요. 8번 침대 어머니가 알려줬어요. 저는 그 얘기 듣고 여기서 밤을 두 번 더 새웠어요.”
“내일 조정은 3년 전 다른 환자 일입니다. 유안이 일이 아닙니다.”
“그게 저한테 무슨 상관이에요.”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게 더 크게 들렸다.
“3년 전 애 부모도 지금 저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을 거잖아요. 선생님은 그때도 종이를 읽었대요? 뒷면까지 읽었대요? 저 사진 찍힌 종이는 뭐예요. 우리 애가 크레파스로 뭘 써줬다고들 하는데, 그거 진짜예요?”
나는 모니터를 봤다. 104였다.
“진짜입니다.”
“그럼 그건 왜 안 찢어요. 왜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그거 들고 어디서 뭘 하려고요.”
대답을 고르는 사이에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선생님, 소아과 선생님도 아니라면서요.”
“내과 3년차입니다. 위층 공사 때문에 6번 침대가 내려와서 제가 맡고 있습니다.”
“내려와서. 그러니까 우리 애는 어쩌다 여기 놓인 거네요. 어쩌다 선생님한테 온 거고.”
그 문장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아니었다는 걸 나만 알고 있었다.
임경아가 휴대폰을 무릎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아이 이마에 손을 얹었다가 떼고, 다시 얹었다가 뗐다. 손을 얹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손톱 옆이 다 뜯겨 붉었다. 여덟 번인지 아홉 번인지에서 그가 손을 자기 입 앞에 대고 눌렀다. 어깨가 한 번 크게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높임말이 벗겨졌다.
“왜 하필 우리 애야. 왜 하필 너야.”
대답할 문장이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라고 그가 요구서에 쓴 글씨가 침대 걸이 클립에 아직 끼워져 있었다. 잉크가 두 번째 글자에서 번져 있었다.
“내일 아홉 시부터 저는 유안이 담당이 아닙니다. 아침에 김 선생이 받습니다.”
“그래서 뭐요. 도망가는 거예요?”
“오늘 밤까지는 제 환자입니다.”
임경아가 나를 몇 초 봤다. 그러고는 손을 내리고 커튼을 젖혀 화장실 쪽으로 나갔다. 슬리퍼가 바닥을 두 번 끌었다. 무릎에 놓고 간 휴대폰이 저절로 어두워졌다.
유안이 눈을 뜨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마른 손가락이 내 가운 소매를 잡아당겼다. 힘이라기보다 무게였다.
“약속, 기억하죠.”
“기억해.”
반 박자 늦었다. 아이는 그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 얼굴로 소매를 놓지 않은 채 다른 손을 베개 옆으로 밀어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크레파스였다. 손가락 한 마디쯤 남은 몽당이였고 종이 껍질은 다 벗겨져 있었다. 잡았던 자리에 손금 모양으로 홈이 나 있었다.
“이건 갈색이에요. 집 색깔.”
“알아.”
“집은 갈색으로 칠하고 지붕만 다른 색으로 해요. 근데 다른 색은 다 엄마가 가방에 넣어 갔어요. 이것만 남았어요.”
“그래서 갈색만 쓰는 거야?”
“이거 다 쓸 때까지 나는 안 죽기로 했는데.”
아이가 소매를 놓고 접힌 종이를 펴서 들어 보였다. 위쪽에 볼펜으로 그은 작대기가 줄지어 있었다. 세로로 짧게, 힘을 준 데는 종이가 파여 있었다.
“오늘 다섯 개예요.”
“이게 알람 수야?”
“삐 하고 울리면 하나 그어요. 어제는 세 개였어요. 그저께는 두 개. 오늘은 아직 밤인데 다섯 개예요.”
“세고 있었어?”
“세야 돼요. 안 세면 몇 번 남았는지 모르잖아요.”
아이가 종이를 배 위에 놓고 손바닥으로 폈다. 손등에 붙인 반창고 테이프 끝이 말려 올라가 있었다.
“선생님, 낮에 내가 물어본 거 대답 안 했어요.”
낮에 대답하지 못한 걸 그때 했다.
“배제가 뭐냐고 물었지. 내일 아침 아홉 시부터 선생님은 유안이 담당 의사가 아니게 돼.”
“왜요.”
“어른들이 그렇게 정했어.”
“종이에 써 있어요?”
“써 있어. 아까 아저씨 글씨로 된 종이에 유안이 침대 번호까지 다 적혀 있었어.”
“그럼 진짜네요.”
아이가 그 말을 하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내가 안 된다고 하면요?”
“그건 안 물어봐 줄 거야.”
아이가 천장을 한 번 보고 나를 봤다. 눈꺼풀이 반쯤 내려온 채였다.
“그럼 오늘 밤은 선생님이에요?”
“그래.”
“아홉 시까지요?”
“아홉 시까지.”
“그러면 됐어요.”
아이가 크레파스를 다시 베개 옆으로 밀어 넣었다. 손이 베개 아래에서 한 번 더 움직였다. 안쪽에 뭘 더 숨겨두었는지 확인하는 손 같았다.
“약속은 종이에 써야 진짜예요. 선생님 종이 아직 안 찢었죠.”
“안 찢었어.”
“내일도 안 찢을 거죠.”
“안 찢어.”
“주머니에 있어요?”
나는 주머니 위를 손등으로 두 번 두드렸다. 종이가 눌리는 소리가 아주 얇게 났다. 아이가 그 소리를 듣고 눈을 감았다.
새벽 한 시 반에 나는 데스크 끝에서 진술서 초안을 마쳤다. 열두 줄이었다. 날짜와 시각, 병상 번호, 동의서에 서명된 이름, 압박 시작 시각과 자발순환 회복 시각을 순서대로 적었다. 마지막 줄에 이렇게 썼다. 3년 전 11월 28일 새벽, 나는 동의서를 뒷면까지 다 읽은 뒤 압박을 시작했다.
그 줄을 지웠다. 커서가 빈자리에서 깜박이는 걸 보다가 다시 썼다. 또 지웠고, 결국 그대로 두었다. 프린터가 종이를 물었다가 반쯤에서 한 번 멈추고 다시 밀어냈다. 출력물은 아래쪽이 따뜻했다. 데스크 모서리에 대고 두 번 접었다.
접은 진술서를 아이의 종이 옆에 겹쳐 같은 주머니에 넣었다. 두 장이 한 겹이 되면서 가슴께가 얇게 부풀었다. 손바닥으로 누르지는 않았다.
휴대폰 알림창에 신경과 외래에서 온 자동 문자가 남아 있었다. 예약 부도 안내와 재예약 링크였다. 링크에만 파란 줄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화면을 위로 밀어 문자를 목록 안으로 넣었고 누르지 않았다. 오늘은 누르지 않기로 했다.
커튼 사이로 임경아가 돌아와 앉는 소리가 났다. 선반에 종이컵 바닥이 닿았다. 손도 대지 않은 컵을 마신 것 같지는 않았다. 모니터는 98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손등을 오래 봤다. 형광등 아래에서 힘줄 그림자만 조금 움직였다. 지금은 떨리지 않았고,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여전히 몰랐다.
야간 간호사가 6번 침대 발치로 응급카트를 밀어다 놓고 발로 바퀴 잠금을 눌렀다. 서랍이 닫히는 반동에 안에서 유리 앰풀들이 한 번 서로 부딪혔다. 그가 카트 위에 든 라벨을 손전등으로 비춰 확인하고 나를 봤다.
“에피 두 개, 아트로핀 하나 위쪽에 빼놨어요. 보드도 침대 밑에 넣었습니다.”
“네.”
“보호자분한테 미리 말씀드릴까요?”
“제가 하겠습니다.”
간호사가 커튼을 반쯤만 닫고 갔다. 닫히지 않은 틈으로 6번 침대 모니터 숫자가 임경아 쪽에서도 보이는 각도가 됐다. 그가 의자를 침대 쪽으로 한 뼘 끌어당겼다. 다리 끝이 바닥에 긁혔다.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고, 이불 위에 놓인 종이의 작대기 다섯 개가 그대로 있었다.
조정 기일까지 아홉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카트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모니터 숫자를 하나씩 읽었다.
이 화의 별점·후기
아직 후기가 없어요. 첫 후기를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