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 하지 마요, 약속11화 / 전 19화1

3부 취소된 예약

11화. 회색 줄과 파란 줄

서지원


당직실 의자 등받이에 가운을 걸었다. 주머니에 든 볼펜과 두 번 접힌 종이를 꺼내 바지 주머니로 옮기고, 셔츠 왼쪽의 이름표를 떼서 같은 주머니에 넣었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손잡이를 한 번 더 당겨 잠긴 걸 확인했다.

중환자실 문에서 신경과 외래 접수창구까지는 사백 걸음이었다. 세면서 걸은 건 아니고, 언젠가 이 길을 재본 적이 있었다. 계단으로 두 층을 내려가 연결통로를 지났다. 통로 중간에서 청소 아주머니가 대걸레로 바닥을 밀고 있었고, 물기를 피해 벽 쪽으로 붙어 지나가는데 락스 냄새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외래 복도는 파장 무렵이라 조명 절반이 꺼져 있었다. 천장 스피커에서 오늘 접수가 마감되었다는 안내가 두 번 나왔다. 오후 세 시 이십육 분이었고 대기 의자에는 노인 둘과 보호자 하나만 남아 있었다. 번호표 기계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선생님, 진료 보러 오신 거예요?”

접수 직원이 먼저 알아봤다. 지난달에 컨설트 회신 늦어져서 두 번 전화한 사람이었다.

“예약이 있어서요.”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직원이 마우스를 두 번 클릭하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모니터가 회전 받침에 얹혀 있어서 몸을 기울이는 동작에 옆면이 내 쪽으로 조금 돌아왔다. 조회 결과가 위에서 아래로 열렸다.

취소. 취소. 취소. 취소. 취소. 취소.

날짜만 달랐다. 첫 줄이 그해 십이월이었고 마지막 줄이 작년 여름이었다. 여섯 줄이 같은 글자로 나란히 내려가 있었고, 일곱 번째 줄에만 오늘 날짜와 15:30이 파란색으로 남아 있었다. 회색 여섯 줄 아래 파란 한 줄.

여섯 번 다 내가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는 당직실에서 걸었고 목소리를 낮춰서 당직이 겹쳤다고 했다. 두 번째는 회식 중에 화장실에서 걸었다. 세 번째부터 직원은 이유를 묻지 않았고, 취소하겠다고 하면 바로 다음 가능한 날짜를 읽어줬다. 나는 매번 새 날짜를 잡고 수첩 맨 뒷장에 적었다. 적을 때는 손이 멎어 있었다.

새벽 두 시에 깨서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고 앉아 있던 밤이 3년치였다. 세어보지는 않았다. 초진 기록지에 그 밤들이 어떻게 들어갈지는 안다. 발현 3년, 야간 악화, 카페인 관련성 확인 필요. 세 줄이면 끝난다. 3년 전 그 밤에 내 손이 왜 흔들렸는지, 나는 지금까지 그걸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병명이 붙으면 그 밤은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신경 하나가 잘못 배선된 결과로 정리되고, 나는 그 정리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성함 말씀해주시면 접수해드릴게요.”

입술을 열었다. 성 한 글자를 발음할 준비까지는 갔는데 혀가 입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유리 칸막이 아래 트인 틈으로 노끈에 묶인 볼펜이 걸려 있었다. 그게 조금 흔들렸다.

손은 판단보다 먼저 움직였다. 창구 턱을 짚고, 짚은 자리를 밀면서 몸을 돌리는 쪽으로. 엄지가 니스 칠 위를 한 번 문질렀다. 왼발이 반 보 물러나고 어깨가 대기 의자 쪽으로 돌아갔다. 노인 하나가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발끝이 자동문을 향하고 있었다.

“선생님?”

뒤에서 두 번 불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동문이 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복도로 나와서야 손바닥이 젖어 있는 걸 알았고, 창구 턱의 니스 냄새가 손에 남아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갔다. 3층 층계참에서 한 번 멈췄다. 창밖으로 주차장 차 지붕들이 보였고, 나는 오른손을 눈높이로 들어 손가락을 펴봤다. 멎어 있었다. 다섯 손가락 어디에도 움직임이 없었다. 손을 내리고 남은 한 층을 올랐다.

4층 중환자실 앞에서 손소독제를 두 번 짰다. 두 번째는 필요 없었다. 유리문 안쪽 중앙 모니터에 6번 침대 파형이 떠 있었다. 오후 세 시 사십일 분, 포화도 91, 심박수 122. 아침보다 포화도가 셋 내려가 있고 심박은 넷 올라가 있었다.

데스크는 비어 있었다. 한여순 선생은 처치실에 들어가 있었고, 조하늘이 8번 침대에서 채혈을 하고 있었다. 나는 6번 침대 커튼을 반쯤 열었다.

유안은 자지 않았다. 침대 머리를 조금 세워둔 자세로, 왼손을 베개 옆에 밀어 넣은 채였다. 오른 뺨에 옅은 눌린 자리가 남아 있었다. 아이가 그걸 손가락 끝으로 문질렀다.

“이거 안 지워져요.”

“곧 없어져.”

“괜찮아요. 표시니까.”

아이가 손가락을 뺨에서 뗐다. 캐뉼라 줄이 귀 뒤에서 한 번 꼬여 있었다. 나는 그걸 풀어 다시 걸었다. 아이의 귀가 차가웠다.

“선생님, 종이 아직 있죠.”

“있어.”

“보여줘요.”

셔츠 위에 걸친 것이 가운이 아니어서 종이는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꺼내서 아이 눈높이에 펼쳐 들었다. 두 번 접힌 자리가 흰 선으로 남아 있었고 검정 글자가 접힌 데서 뭉개져 있었다. 아이는 종이를 만지지 않고 글자만 위에서 아래로 읽었다. 다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접어 넣었다.

“그때 왜 선생님을 골랐는지 나중에 말해준다고 했잖아요.”

“했어.”

“지금 말할게요.”

아이가 숨을 한 번 고르고 등을 조금 더 세웠다. 그 동작에 알람이 짧게 울렸다가 멈췄다.

“저기서 간호사 선생님들이 얘기했어요. 커튼 있으면 안 들리는 줄 아는데 다 들려요. 3년 전에 누르면 안 되는 사람을 누른 사람이 서지원 선생님이라고 했어요.”

목이 마른 게 먼저 왔다.

“단체방 사진도 봤어요. 엄마 휴대폰에서요. 내 손하고, 선생님 이름 나온 거.”

“그건.”

“저는 처음부터 알고 골랐어요.”

아이의 말투가 또박또박했다. 존댓말 어미를 끝까지 붙였다.

“누르는 사람이 안 누르면 그게 진짜 약속이에요. 안 누르는 사람은 약속 안 해도 안 누르니까. 그건 약속이 아니에요.”

모니터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어왔다. 나는 아이 침대 난간에 손을 얹었다. 쇠가 미끄러웠다.

“그건 소문이야.”

“그럼 아니에요?”

반 박자를 놓쳤다. 그 반 박자가 대답이었다. 아이는 더 묻지 않았고, 눈을 내리깔지도 않았다. 지난번처럼 알겠습니다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베개 옆에 넣은 손을 조금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엄마는 선생님 손이 흔들려서 안 된다고 했어요. 저는 흔들려도 돼요. 안 누르면 되니까.”

내 오른손이 난간 위에 놓여 있었다. 멈춰 있었다. 아까 접수창구 턱을 밀어낼 때도 멈춰 있었고, 층계참에서 펴봤을 때도 멈춰 있었다. 이 손이 언제 흔들리는지 아는 사람이 이 병동에 세 명 있었고, 그중 여덟 살이 그걸 근거로 나를 골랐다.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세 시 오십이 분, 부재중 없음. 회의는 세 시에 시작했고 담당 배제 안건은 대개 앞쪽에 붙는다.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선생님.”

아이가 나를 봤다.

“근데 배제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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