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 밤새 갈아야 한다8화 / 전 18화1

2부 안지랑, 2005

8화. 문을 닫고 빗장을 거는 소리

서지안


“쫌만 참으이소, 어머니. 발목만 살살.”

물리치료사가 엄마의 다리 밑에 베개를 받치고 발등을 천천히 눌렀다. 오후 햇빛이 창을 비스듬히 넘어와 이불 위로 길게 누웠다. 엄마는 그 빛 속에서 이마에 땀을 맺으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프면 아프다 하라고, 그래야 힘 조절을 한다고 치료사가 몇 번을 일렀는데도 엄마는 입술만 안으로 말아 물었다.

“어머니, 억지로 참으시면 여가 더 굳어예. 아, 소리라도 내이소.”

치료사가 발목을 한 번 더 접어 올릴 때 엄마의 입에서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그게 다였다. 이불 위에 얹힌 오른손이 시트를 움켜쥐었다가 폈다. 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쥐었다가, 다시 풀 때는 손등의 흉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나는 침대 난간을 붙잡고 그 손과 다문 입을 번갈아 봤다. 가게에서 뜨거운 판을 맨손으로 옮기다 데었다던 그 흉터였다. 그때도 엄마는 소리를 안 냈을 것이다. 아프다고 말하는 법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물어본 적이 없었다.

치료사가 도구를 챙겨 나가고 커튼이 스르륵 닫히는 소리가 났다. 병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옆 침대 아주머니는 자는지 커튼 너머로 규칙적인 숨소리만 넘어왔다. 엄마는 베개에 올린 다리를 내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땀이 식으면서 이마 위 잔머리가 관자놀이에 달라붙어 있었다. 손등의 흉터가 햇빛에 반들거렸다. 나는 그 흉터에 대고 말을 걸듯이 입을 뗐다.

“엄마, 그때 가게 힘들었제. 아버지 가고, 혼자서.”

엄마의 시선이 접힌 다리에 그대로 머물렀다. 손가락이 시트 위에서 한 번 오므라들었다.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뭐라도, 한숨이라도 나오면 그 틈으로 더 들어갈 참이었다.

“다 지난 일이다.”

그러고는 고개를 벽 쪽으로 돌렸다. 다섯 글자가 문을 닫고 빗장을 거는 소리처럼 들렸다. 창으로 들던 빛이 엄마의 옆얼굴에서 미끄러져 베개 밑으로 떨어졌다. 돌아누운 등이 이불 밖으로 마른 어깨를 드러냈다. 나는 그 어깨가 오르내리는 걸 한참 봤다.

나는 어깨에 걸어둔 가방을 무릎 위로 내렸다. 그 안에 둘째 권이 들어 있었다. 지퍼를 반쯤 열고 노트의 딱딱한 표지 모서리에 손끝을 댔다. 이걸 꺼내 침대 위에 펼치면, 엄마가 스무 해 동안 목구멍으로 삼킨 말들을 한 줄씩 짚어 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이렇게 적혀 있잖아, 엄마 손으로. 그렇게 말하면 벽으로 돌린 저 얼굴이 이쪽을 볼지도 몰랐다. 아니면, 저 등이 더 굳어버릴지도 몰랐다. 손가락이 지퍼 이빨 위에서 멈췄다. 더 열리지 않았다.

“됐다 마.” 엄마가 등을 보인 채로 말했다. “니는 원고 안 보나. 바쁜 사람이.”

나는 지퍼를 도로 채웠다. 채우는 소리가 병실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밥 나오면 부를게요.”

복도로 나와 벽에 기대 섰다. 밥차가 지나갈 시간은 아직 멀었다. 나는 아무도 부르지 않을 걸 알면서 그렇게 말했고, 엄마도 아마 알았을 것이다.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으니 병실 안에서 엄마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 링거줄이 스탠드에 부딪히는 소리가 얇게 새어 나왔다.

저녁 배식이 왔을 때 엄마는 반쯤 먹고 수저를 놓았다. 나는 내려가서 병원 앞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을 시켜놓고 절반을 남겼다. 다시 올라가 엄마가 눕는 걸 보고 커튼을 여며주고, 내일 아침에 오겠다는 말도 없이 병실을 나왔다.

병원 정문을 나서자 저녁 공기가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낮보다 바람이 찼다. 응급실 입구 쪽 벤치에서 환자복 위에 패딩을 걸친 사람이 링거대를 옆에 세워둔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그 뒤로 주차 차단기가 올라갈 때마다 삑삑 소리가 났다. 나는 외투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 걸었다. 302호가 있는 층 복도의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깜빡였다. 한 번 어두워졌다가 다시 들어오고, 또 어두워졌다. 나는 그 깜빡임 아래를 지나 방문을 땄다.

방은 낮에 나갈 때 그대로였다. 히터를 안 틀어놓고 나가서 안이 서늘했다. 나는 외투를 입은 채로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밖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골목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 어디선가 텔레비전 볼륨을 키우는 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왔다. 벽등을 켜니 방 한쪽만 노랗게 밝아지고 나머지는 그늘로 남았다. 나는 그 노란 원 안에서 가방을 열고 둘째 권을 꺼냈다.

첫 권보다 종이가 더 누랬다. 표지 아래쪽 귀퉁이에 물에 번졌다 마른 자국이 둥그렇게 남아 있었다. 국물이 튀었는지, 눈물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젖은 손으로 만졌던 건지 알 수 없었다. 표지를 넘기자 종이가 서로 눌어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오래 눌려 있던 페이지들이 마지못해 벌어졌다.

2005년 늦봄. 글씨가 급했다. 획이 서로 엉겨서 어디서 한 글자가 끝나고 다음 글자가 시작되는지 두 번씩 읽어야 했다.

‘오늘 그 사람 소식 들었다. 딴 데 산다 카더라. 지안이한테는 말 안 할란다.’

그 아래 줄은 잉크가 번져 있었다. 물기를 먹은 자리에서 글자가 퍼져 회색 안개처럼 뭉개졌다. 나는 벽등을 노트 가까이 끌어당겼다. 등갓이 종이에 닿을 만큼 바짝. 그래도 번진 줄은 끝내 읽히지 않았다. 읽히지 않는 그 한 줄이, 읽히는 문장보다 더 오래 나를 붙들었다.

낮에 엄마가 벽 쪽으로 돌리며 닫아버린 문이 이 노트 위에서는 열려 있었다. 입으로는 다 지난 일이라던 것이 여기서는 밤마다 다시 살아나 페이지 위에 눌러앉았다. 소식을 들었다고, 딴 데 산다더라고, 나한테는 말 안 하겠다고. 그날 낮에 나는 웃으며 학교에 갔거나 급식을 먹었거나 짝꿍 민서와 떠들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가 밤에 이 줄을 눌러 쓸 때 나는 옆방에서 자고 있었다.

밑불을 꺼뜨리면 안 된다고, 한 번 꺼지면 다시 붙이기 힘들다고 했던 그 손. 밤새 화덕 곁에 쭈그리고 앉아 연탄을 갈던 손이 가게 문을 닫고 돌아와서는 이 노트 앞에 앉았다. 불을 지키던 자리에서 글씨를 지켰다. 나한테 보이면 안 되는 것들을 여기다 옮겨 적어놓고, 다음 날 아침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얼굴로 도시락을 쌌다.

낮에 물러선 내가 부끄러웠다. 엄마가 입을 닫을수록 나는 이 흔들리는 글씨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물어서 안 되는 것을 여기서는 물을 수 있었다. 대답 없는 엄마 대신 번진 잉크가 대답했다.

창밖에서 연탄 냄새가 얇게 배어들었다. 나는 번진 그 줄 위에 손끝을 얹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글자가 만져지지는 않았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여름이었다. 나는 손끝을 떼지 않은 채, 넘기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옛집 장롱 밑에 아직 한 권이 더 있었다. 그 안에 이렇게 번져서 못 읽는 줄이 몇 개나 더 접혀 있을지, 나는 그것부터 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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