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 밤새 갈아야 한다6화 / 전 18화1

2부 안지랑, 2005

6화. 개나리 덤불 속에 버린 온기

서지안


교복 깃에서 냄새가 났다.

나는 버스 정류장 유리에 옆얼굴을 비춰 보며 깃을 세웠다 눕혔다 했다. 밤새 방 안에 걸어둔 교복이었다. 방이 곧 부엌이고 부엌이 곧 살림인 단칸에서, 창문을 아무리 열어놔도 냄새는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침이면 그 냄새가 나보다 먼저 학교에 가 있는 것 같았다.

곧장 가면 오 분이었다. 골목을 빠져나가 왼쪽으로 꺾으면 순이네 앞이었고, 그 앞을 지나면 냄새가 교복에 한 겹 더 얹혔다. 그래서 나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세탁소를 지나고 문 닫힌 방앗간을 지나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길을 한 바퀴 빙 돌아 학교로 갔다. 십오 분이 걸렸지만 나는 그 십 분을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날 아침에는 골목을 나서기도 전에 화덕 불빛이 보였다. 여섯 시였다. 엄마는 순이네 앞에 쪼그려 앉아 밑불을 살피고 있었다. 시뻘건 연탄 위로 김이 오르는 걸 나는 골목 어귀에서 먼저 봤다. 노란 보온도시락이었다. 엄마 손에 들린 그 노란 통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지안아.”

엄마가 나를 봤다. 나는 못 본 척 걸음을 옮겼다.

“이거 뭇고 가라. 도시락 여 있다.”

엄마가 도시락을 들어 흔들었다. 손등에 감긴 헝겊이 그 아침에도 그대로였다. 나는 그 헝겊을 보고도 걸음을 빨리했다. 오른쪽으로 돌기도 전에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서 한 번 더 들렸지만, 나는 이미 방앗간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김이 오르던 노란 통에서도 곱창 냄새가 날 것 같았다. 그게 도시락 밥에서 나는 건지 엄마 손에서 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 안에서 나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짝꿍 민서가 코를 찡긋했다.

“니 또 그 냄새 난다.”

민서는 웃으면서 말했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실을 말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가방을 책상 밑으로 밀어 넣었다. 노란 도시락이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밀어 넣을수록 냄새가 밑에서 올라오는 것 같아 나는 발로 가방을 한 번 더 안쪽으로 찼다.

점심시간에 나는 뚜껑을 열지 않았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펴고 반찬을 바꿔 먹는 동안 나는 복도로 나가 매점에서 삼백 원짜리 빵을 샀다. 비닐을 벗기면 밍밍한 우유 냄새가 나는 그 빵이 좋았다. 아무 냄새도 아닌 냄새. 나는 계단참에 서서 그걸 천천히 뜯어 먹었다. 배가 부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종례가 끝나고 아이들이 다 빠져나갔다. 나는 자리에 남아 가방을 열었다. 노란 도시락을 꺼내자 아직 온기가 손바닥에 닿았다. 아침 여섯 시에 싼 밥이 오후까지 식지 않았을 리 없는데도 나는 그 통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보온도시락이라는 게 원래 그런 물건이었다. 식지 말라고, 데워진 채로 오래 가라고 만든 통.

나는 학교 뒤로 돌아갔다. 급식실 옆 담벼락 밑에 마른 개나리 덤불이 있었다. 겨울이라 잎도 꽃도 없이 가지만 뻣뻣하게 엉킨 덤불이었다. 나는 그 사이로 도시락을 밀어 넣었다. 가지가 손등을 긁었다. 통이 덤불 안쪽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됐을 때, 손바닥에 남은 온기가 그제야 사라졌다.

돌아서는데 뒤통수가 뜨거웠다. 아무도 보지 않았는데도 뜨거웠다. 나는 뛰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걸었다.

집에 오니 엄마는 가게에 나가고 없었다. 나는 저녁에 가게로 밥을 먹으러 갔다. 손님이 빠진 자리에서 엄마가 물었다.

“도시락은.”

“학교에 두고 왔어. 내일 가져올게.”

거짓말이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엄마는 국자로 곱창을 뒤집다 말고 나를 한 번 봤다. 헝겊 감은 손이었다.

“그래. 잘 챙기라.”

그 한마디였다. 엄마는 더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국물에 밥을 말았다. 그날 밤 이불 속에서 나는 개나리 덤불에 밀어 넣던 도시락의 온기를 떠올렸다. 그게 왜 자꾸 떠오르는지 그때는 몰랐다. 죄인 줄도 몰랐다. 그냥 손바닥이 따뜻했던 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모텔 벽등 아래에서 나는 그 겨울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여백을 비집고 있었다. 숫자들 사이, 날짜도 없는 자리에 엄마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지안이가 요새 내를 피한다. 냄새 때문인갑다. 내 몸에서도 나는 걸 낸들 와 모르겠노. 미안해서 아무 말 못했다.’

나는 그 줄을 두 번 읽고 세 번 읽었다. 도시락을 학교에 두고 왔다고 했을 때 엄마가 나를 한 번 봤던 그 눈이 여기 있었다. 잘 챙기라, 하고 국자를 다시 든 손이 여기 있었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내가 골목을 빙 돌아 등교하는 것도, 도시락을 두고 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다 알고 있었다. 알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밑불을 살리느라 밤새 손을 데던 사람이었다. 그 불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딸이 자기를 피한다는 걸 알면서, 그 냄새가 자기 몸에서도 난다는 걸 알면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사람이었다. 나는 스무 해 동안 내가 엄마를 속였다고 믿어왔다. 도시락을 버린 것도, 골목을 돌아간 것도 내 비밀이라고.

나는 노트를 덮지도 넘기지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마른 개나리 덤불 속에서 식어가던 그 온기가, 이십 년이 지난 벽등 아래에서 손바닥으로 다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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