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안지랑, 2005
5화. 연기는 괜찮다
이월의 숫자들은 돈이었다.
여백에 세로로 눌러쓴 숫자 옆에 ‘곱창 도매’라고 붙어 있었다. 그 아래로 ‘한 근 얼마’, ‘내장 세트 얼마’ 같은 글자가 흐릿하게 이어졌고, 숫자를 몇 번이나 고쳐 쓴 자국이 종이를 얇게 파놓았다. 엄마는 계산이 느린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마트에서 잔돈을 세느라 뒷사람 눈치를 보던 엄마의 손이 떠올랐다. 그 손이 이 밤에는 도매값을 몇 번이고 지웠다 다시 적고 있었다.
숫자들 끝에 미자 이모의 이름이 있었다. 이름 옆으로 한 줄이 눌러쓰여 있었다. ‘미자가 자리 하나 봐 놨다 한다. 가게 자리 보러 감.’
그다음 장에 그 자리 이야기가 있었다. ‘자리세가 싸다. 연기가 많이 온다고 다들 마다한 자리라 카더라. 나는 연기는 괜찮다.’ 나는 ‘나는 연기는 괜찮다’는 문장 위에 손끝을 얹었다. 안지랑 골목 끝, 셋방보다도 좁던 그 가게 앞에 선 마흔다섯의 엄마가 보였다. 남들이 연기 때문에 마다한 자리를 엄마는 연기 때문에 골랐을 리 없었다. 쌌으니까 골랐고, 싼 데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견디겠다고 스스로에게 적어둔 것이었다.
개업하던 날 저녁을 나는 기억해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맞은 건 새까맣게 탄 냄새였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그 냄새가 왔다. 곱창이 익는 냄새가 아니라 곱창이 죽는 냄새였다. 가게 앞에 서니 유리문 안이 뿌옜다. 문을 밀자 연기가 얼굴로 쏟아졌다.
“엄마, 이거 다 탔는데.”
나는 석쇠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벌겋게 익어야 할 곱창이 숯덩이가 되어 석쇠 살에 눌어붙어 있었다. 손대면 부스러질 것 같았다. 엄마는 부지깽이로 연탄을 쑤시고 있었다. 등이 나를 향해 있었고, 그 등이 연기 속에서 잘게 떨렸다.
“됐다 마. 니는 저리 가 있어라.”
안쪽 테이블에 아저씨 둘이 앉아 있었다. 소주병 하나가 반쯤 비어 있고 안주 접시는 비어 있었다. 곱창이 안 나오니 술만 마시다 간 것이었다. 내가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둘은 일어섰다. 한 사람이 지폐를 테이블에 놓으며 “다음에 오께요” 했는데, 그 다음이 없을 걸 나도 알고 엄마도 알았다.
엄마는 문이 닫히자 연탄집게를 들었다. 다 탄 아래짝을 빼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게 끝이 미끄러졌다. 불붙은 연탄이 화덕 입구에서 기우뚱했고, 엄마가 그걸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시뻘건 연탄 모서리에 오른손등이 닿았다.
“앗.”
소리보다 냄새가 먼저 왔다. 살 타는 냄새. 곱창 타는 냄새와는 다른, 한 번 맡으면 잊히지 않는 냄새였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서 구석에 있던 대야를 끌어다 물을 받았다. 손이 떨려서 물을 반이나 흘렸다. 엄마는 손을 대야에 담갔다. 물속에서도 손등이 벌겠다.
“엄마, 병원 가야 되는 거 아이가.”
“괜찮다.”
“안 괜찮은데.”
“괜찮다 마.”
엄마는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말이 정말 괜찮아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는 걸 나는 열세 살에도 알았고, 스무 해가 지나 병실에서 그 손등을 만졌을 때 다시 알았다. 밀랍처럼 굳어 단단하던 그 흉터는 여기서 시작됐다. 데였다 마, 하고 손을 이불 밑으로 넣던 엄마는 이 저녁을 이불 밑에 넣고 살았다.
밤이 되어 미자 이모가 왔다. 자기 가게 문을 닫고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순아, 니 불도 못 붙이는 게 곱창집을 우째 한다 캤노.”
이모는 혀를 차면서도 화덕 앞에 쪼그려 앉았다. 새 연탄 하나를 집어 아래 불에 비스듬히 포개 얹었다. 구멍을 맞추는 손놀림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불은 밤새 갈아야 된다. 잠깐 눈 붙일라꼬 놔뚸다가는 아침에 다시 붙이기가 얼매나 애먹는지 아나. 한 번 꺼지모 끝이라.”
엄마는 손등에 헝겊을 감고 이모 옆에 붙어 앉았다. 헝겊 밑으로 아까 데인 자리를 감춘 채였다. 이모의 손이 어디로 가는지 눈으로 좇았다. 나는 두 사람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여, 밑불이 살아 있어야 우엣불이 붙는 기라. 밑에가 죽으모 우에는 암만 새 탄을 얹어도 안 붙는다. 밑불부터 봐라, 밑불부터.”
밑불부터. 이모가 그 말을 두어 번 했다. 엄마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연기에 눈이 매워 자꾸 눈을 비볐다. 손등으로 문지를 때마다 눈물이 났다. 그게 연기 때문인지 아닌지 그때는 나눠 생각할 줄 몰랐다.
엄마의 그 끄덕임을 나는 곱창 굽는 법을 배우는 끄덕임으로만 알았다. 밑불이 살아야 우엣불이 붙는다는 말도 화덕에 관한 말로만 들었다. 스무 해가 지나 모텔 방 벽등 아래에서, 나는 그날의 마지막 줄을 읽었다.
‘오늘도 화덕에 불을 다시 갈아 노았다. 손은 데었지만 불은 안 꺼졌다. 지안이는 아직 모른다. 알면 안 된다.’
손은 데었지만 불은 안 꺼졌다. 엄마는 그날 밤 이 한 줄을 데인 손으로 눌러썼다. 헝겊 밑의 손등이 욱신거렸을 것이고, 그래도 펜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여덟 살 아래 어린 나를 생각했다. 그날 엄마 옆에서 눈만 비비던 열세 살은 그 문장이 자기를 향해 쓰였다는 걸 몰랐다. 밑불부터, 하던 이모의 목소리가 벽등 아래로 다시 왔다. 나는 노트를 무릎에 올려둔 채 오래 손을 떼지 못했다.
노트를 덮으려다 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 삼월이었다. 여백의 숫자가 이월보다 늘어 있었다. 그 숫자들 사이에 내 이름이 섞여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벽등을 켠 채로 오래 그 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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