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연기 냄새
3화. 오래된 초의 흉터와 덮인 밤
병실 문을 밀자 소독약 냄새가 옷깃에 묻은 곱창 냄새를 덮었다. 6인실은 저녁 무렵의 어스름 속에 잠겨 있었고, 창가 자리 커튼만 반쯤 걷혀 있었다. 엄마는 눈을 감고 있었다. 링거 줄이 손등에 테이프로 붙어 있고 이불은 배까지 반듯하게 올라와 있었다. 반듯한 게 오히려 낯설었다. 누가 대신 개켜 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침대 밑 서랍을 조용히 열고 옛집에서 챙겨 온 가방을 밀어 넣었다. 속옷과 수건, 칫솔과 치약을 하나씩 꺼내 서랍 칸에 나눠 놓는 동안 손끝에 자꾸 걸리는 것이 있었다. 가방 안쪽, 교정지 뭉치 밑에 눕혀 놓은 대학노트였다. 나는 그것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밀어 넣을수록 손등에 그 무게가 남았다.
“왔나.”
엄마가 눈을 떴다.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나는 “네” 하고 물통을 들어 복도 정수기로 갔다. 물이 차오르는 동안 창밖을 봤다. 병원 뒤로 앞산의 능선이 검게 엎드려 있고, 그 아래로 대구 시내의 불빛이 성기게 박혀 있었다. 정월의 밤바람에 유리창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로에는 차가 뜸했고, 가끔 지나가는 헤드라이트가 병실 유리에 길게 늘어졌다가 사라졌다. 창턱에는 누군가 두고 간 귤 두 알이 말라 가고 있었다. 나는 물을 받아 돌아오는 짧은 사이에도 서랍 속 노트가 생각났다. 목이 말랐다. 물을 받아 온 사람은 나인데 정작 내가 물을 마시고 싶었다.
“밥은 뭇나.”
엄마가 다시 물었다. 나는 병원 앞 김밥집 간판을 지나쳐 온 걸 떠올렸다. 불 켜진 유리문 안에서 김이 오르던 걸 봤으면서도 그냥 지나쳤다.
“먹었어요.”
“거짓말 마라. 얼굴에 다 씨있다.”
엄마는 그러고는 천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들킨 게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딸이 밥을 굶었다는 사실이 당신을 더 아프게 하는 것 같아 나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간병인이 저녁 배식 수레를 밀고 지나갔다. 창가 자리 앞에 식판이 놓였다. 미음 그릇에서 김이 올라오는데 엄마는 숟가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침대 각도를 한 뼘쯤 올리고 식판을 무릎 앞으로 당겨 주었다.
“내가 무울게. 니는 됐다.”
엄마가 손을 저었다. 저은 손이 미음 그릇까지 가지 못하고 도로 이불 위로 떨어졌다. 골반에 쇠심을 박은 몸은 그 작은 동작 하나도 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숟가락을 떠서 후후 불었다.
“됐다 마. 애 취급 하지 마라.”
엄마는 핀잔을 주면서도 입은 벌렸다. 미음이 입술 사이로 들어갔다. 나는 숟가락을 그릇 벽에 대고 한 번 훑어 물기를 뺀 뒤 다시 떴다. 엄마는 씹을 것도 없는 미음을 오래 물고 있다가 힘겹게 삼켰다. 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렸다. 두 번째 숟가락을 넣어 주자 입가로 미음이 조금 흘러내렸다. 나는 휴지를 뽑아 아래 입술을 눌러 닦았다. 예순넷의 입가는 마르고 껍질이 일어 있었다.
“천천히 드세요. 목 멜라.”
“니는 옛날부터 잔소리가 많았다.”
엄마가 눈은 감은 채로 그렇게 말하고 또 입을 벌렸다. 세 술째부터는 손을 젓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이 열두 살의 나에게 밥을 떠먹이던 손을 떠올렸다. 감기로 열이 오른 날, 죽 그릇을 들고 앉아 후후 불어 주던 손. 그때 그 손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미음이 반쯤 줄었을 때 엄마가 불쑥 물었다.
“니 내일 몇 시 차고.”
나는 대답을 미루고 그릇 바닥을 숟가락으로 긁었다. 긁히는 소리가 병실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됐다 마. 니는 올라가라. 여 있어봤자 니 일만 밀린다.”
엄마는 벽 쪽으로 몸을 조금 틀려다가 짧게 숨을 삼켰다. 고관절이 당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흘러내린 담요를 끌어 올려 어깨까지 여며 주었다. 그러다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오른손등을 보았다.
번들거리는 살가죽이 머리맡 등불 아래 오래된 초처럼 굳어 있었다. 열두 살 때도 봤고, 스무 살에도 봤다. 취직해서 첫 월급으로 내복을 사 왔을 때도 봤다. 그런데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물으면 그 대답이 나를 향해 되돌아올까 봐, 결국 내 이름이 그 흉터 어딘가에 적혀 있을까 봐.
“엄마, 이거 언제 이랬어요.”
손끝이 나도 모르게 흉터를 짚었다. 성한 손등은 얇고 물렁했는데 흉터 자리만 유독 단단했다. 밀랍을 굳혀 놓은 것처럼 매끄럽고 차가웠고, 가장자리는 도톰하게 부풀어 손끝에 턱이 걸렸다. 눌러도 감각이 없는 듯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톱만 한 자국이 손목 쪽으로 길게 번져 있었다. 나는 그 번진 방향을 따라 손끝을 천천히 옮겼다. 뜨거운 것이 어느 방향에서 이 손등을 덮쳤는지 알 것도 같았다. 엄마는 손을 슬그머니 이불 밑으로 뺐다.
“데였다 마.”
그뿐이었다. 그 짧은 한마디 뒤에 몇 겹의 밤이 접혀 있는지 나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서랍 속 노트가 다시 무거워졌다. 나는 그것을 꺼내 침대 위에 펼치고 싶었다. 이거 읽었어요, 하고. 2005년 1월, 화덕에 불을 다시 갈아 놓았다고 쓴 그 첫 장을 엄마 앞에 내밀고, 여기 적힌 게 다 뭐냐고 묻고 싶었다. 목까지 그 말이 차올랐다.
“얼른 가라. 밤길 험타.”
엄마가 눈을 감았다. 문이 닫히듯 조용히 감았다.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까지 올라온 것을 도로 삼키는 일이 이렇게 쉬웠다. 그 쉬움이 무서웠다. 전화를 못 받은 날에도 나는 나중에 걸겠다고 미뤘다. 명절에는 돈만 부치고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늘 문 닫히는 소리를 핑계 삼아 돌아섰다.
병실 형광등이 하나둘 꺼졌다. 옆 침대 커튼 너머로 누군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창밖 시내의 불빛도 아까보다 성겨졌다. 나는 엄마 손등 위에 담요를 한 번 더 여몄다. 흉터가 담요 아래로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를 손바닥으로 잠깐 눌렀다. 담요 너머로도 그 단단함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내일 몇 시 차냐고, 엄마는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서랍을 열어 노트를 다시 만졌다. 첫 권만 챙겨 왔다. 나머지 두 권은 장롱 밑에 도로 넣어 두고 왔다. 매듭이 원래대로 묶였는지 자신이 없었다. 아직 읽지 않은 것들이 대구에 남아 있었다.
나는 접이식 보조 침대를 펴는 대신 창가의 보호자 의자를 침대 곁으로 끌어다 앉았다. 엄마의 숨소리가 고르게 오르내렸다. 잠이 든 건지 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링거 방울이 떨어지는 속도를 눈으로 세다가, 손을 뻗어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엄마의 발끝을 담요 안으로 넣어 주었다.
내일은 올라가지 않겠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속으로만 그렇게 정했다.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또 됐다 마, 소리가 돌아올 것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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