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연기 냄새
2화. 낡은 상자와 곱창 익는 골목
“안지랑네거리요.”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나서 나는 창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익숙한 간판들이 스쳤다. 곱창, 막창, 대창. 붉은 글씨들이 겨울 오후의 흐린 빛 속에서 하나씩 지나갔다. 나는 그것들을 보지 않으려고 무릎에 놓인 가방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 안에는 다음 주까지 넘겨야 할 교정지 뭉치가 들어 있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장도 펴보지 못한 채였다.
옛집 대문은 삼 년 동안 여닫힌 적이 별로 없는 티가 났다. 열쇠 구멍에 넣은 열쇠가 뻑뻑하게 돌아갔다. 문을 밀자 사람 없는 집 특유의 냄새가 먼저 밀려나왔다. 곰팡내와 오래 벽에 밴 연탄 냄새, 그 위에 파스 냄새가 얇게 덮여 있었다. 엄마가 잠들기 전 어깨에 붙이던 그 냄새. 나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섰다.
입원 가방에 넣을 것부터 챙겼다. 속옷과 수건, 칫솔과 치약. 서랍을 여니 개어놓은 속옷이 색이 다 바래 있었다. 고무줄이 늘어나 헐거워진 것도 있었다. 나는 그중 그나마 성한 것을 골라 가방에 넣다가 손을 멈췄다. 명절마다 계좌로 돈을 부칠 때 나는 늘 문자를 덧붙였다. 이런 거 좀 사 입어. 필요한 거 사. 엄마는 그때마다 알았다고만 했다. 그러고는 이 서랍에 삼 년 전 것을, 오 년 전 것을 그대로 개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부친 돈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 내가 모르는 곳으로 흘러갔겠지. 나는 물어본 적이 없었다. 물어보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편했으니까.
화장실 선반에서는 반쯤 짜인 치약과 손잡이가 닳은 칫솔을 그대로 담았다. 새것을 병원 앞 약국에서 사면 될 텐데도 손이 자꾸 쓰던 것으로 갔다. 엄마가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낯선 물건만 잔뜩 있으면, 그게 더 서러울 것 같았다.
가방을 채우고 방을 둘러보다가, 장롱 밑으로 삐져나온 노끈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다시 보니 그건 무언가를 묶고 남은 끝이 아니라, 상자 하나가 장롱 밑에 밀려 들어가 있다는 표시였다. 나는 무릎을 꿇고 팔을 뻗었다. 장롱 밑은 손이 잘 닿지 않을 만큼 깊었다. 어깨를 바닥에 붙이다시피 하고서야 손끝에 먼지가 뭉쳐 닿았고, 그 너머로 딱딱한 종이 모서리가 잡혔다. 노끈을 잡아당기자 상자가 바닥을 긁으며 딸려 나왔다.
크라운산도 그림이 그려진 과자 상자였다. 그림은 반쯤 벗겨져 있었고, 뚜껑 위에 앉은 먼지를 손바닥으로 쓸자 회색 자국이 손금에 파고들었다. 노끈은 몇 번이나 돌려 묶여 있었다. 한 번 두른 게 아니라 세로로 가로로 몇 겹씩 매어, 쉽게 열리지 않게 한 매듭이었다. 나는 매듭 끝을 손톱으로 걸어 당겼다. 오래되어 굳은 노끈은 파고 들어가기만 하고 좀처럼 느슨해지지 않았다. 손톱 밑이 아렸다. 이빨로 물어뜯을까 하다가 그만두고, 엄지손톱을 매듭 사이에 밀어 넣어 조금씩 벌렸다.
열어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과, 그래도 열어야 한다는 마음이 손끝에서 서로를 밀었다. 엄마는 이걸 남에게 보이려고 이렇게 묶어둔 게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매듭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한참을 씨름하다 마지막 고를 잡아당기자 매듭이 툭 풀렸고, 상자가 조금 기울며 안에서 무언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뚜껑을 열자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밴 대학노트 세 권이 포개져 있었다. 표지는 낡아 모서리가 둥글게 닳았고, 겉장에는 아무 글씨도 없었다. 나는 맨 위의 것을 집어 표지를 넘겼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첫 장에 있었다.
2005년 1월.
숫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해 겨울에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엄마는 그때 마흔다섯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몇 살 더 많았을 뿐인 나이. 나는 노트를 무릎에 올린 채 다음 장을 넘겼다. 맞춤법이 군데군데 어긋난 문장들이 줄을 맞추지 못하고 기울어져 있었다.
오늘도 화덕에 불을 다시 갈아 노았다.
그 아래 줄에.
지안이는 아직 모른다. 알면 안 된다.
손이 저릿했다. 화덕에 불을 갈았다는 건, 그해 겨울 엄마가 시장 어귀에서 곱창을 굽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겨울 엄마가 밤늦게 들어와 손끝이 새카맣던 걸 기억한다. 학교 준비물 값을 달라고 하면 엄마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꼬깃한 천 원짜리를 세어 주었다. 그 돈에서 나던 냄새를 나는 창피해했다. 열두 살의 나는 엄마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는 몰랐다. 알면 안 됐다. 엄마가 이 노트에 그렇게 적어두었으니까.
나는 노트를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열두 살의 내가 이 방 어디쯤에서 잠들어 있었을까. 저 벽 쪽이었을까, 창 밑이었을까. 그 아이가 이불을 덮고 자는 동안, 엄마는 이 방 어느 구석에 앉아 손을 호호 불며 이 문장들을 적었을 것이다. 알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눌러쓰면서.
세 권째 노트를 집어 들었다. 무심코 뒤표지를 넘겼을 때, 안쪽에 겉봉도 없이 접힌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는 게 보였다. 접힌 자국이 오래되어 종이의 결이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나는 그것을 펼치려고 손끝을 종이 사이에 넣었다가, 멈췄다. 지금 이걸 읽으면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무엇이 원래대로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창밖 골목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나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종이는 접힌 그대로 노트 뒤에 다시 밀어 넣었다. 대신 첫 권을 집어 가방을 열고, 교정지 뭉치 옆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인쇄된 남의 문장들 옆에 엄마의 흔들리는 글씨가 나란히 놓였다. 나머지 두 권은 상자에 도로 포개고 뚜껑을 덮었다.
노끈을 다시 묶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 묶여 있던 매듭 모양과 똑같지가 않았다. 세로로 두 번 돌린 다음 가로로 감았던가, 아니면 그 반대였던가. 나는 상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몇 번을 풀었다 다시 묶었다. 손톱이 다시 아팠다. 엄마가 이걸 어떻게 묶어두었는지 기억하려고 애썼지만, 나는 그 매듭을 오늘 처음 본 것이었다. 엄마가 이 상자를 여닫던 수많은 밤을 나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결국 비슷하게만 해두고, 노끈 끝자락이 아까처럼 조금 삐져나오도록 위치를 맞춰 상자를 장롱 밑으로 밀어 넣었다.
가방을 어깨에 멨다. 무게가 아까보다 무거웠다. 방을 나서기 전에 나는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장롱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벽에 붙어 있었다.
머하러 그런 걸 들추노.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툭 떨어졌다. 실제로 들은 것도 아닌데 억양까지 또렷했다. 나는 그 목소리에 쫓기듯 신발을 신었다. 문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는데 손이 조금 떨렸다.
골목으로 나서자 어디선가 곱창 굽는 냄새가 실려왔다. 기름이 연탄불에 떨어져 타는,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어느 집 화덕에서 올라오는 냄새였다. 나는 그 자리에 잠깐 멈춰 섰다. 중학생 때는 이 냄새가 옷에 밸까 봐 골목을 빙 돌아 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방 안에서 첫 권이 교정지에 눌려 있을 것이었다. 2005년 1월이라고 적힌 그 첫 장이.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것을 읽게 될까. 아니면 읽지 못한 채 서울로 가져가게 될까. 냄새가 옷깃에 스며드는 동안, 나는 아직 그 답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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