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연기 냄새
1화. 서리 내린 창에 이마를 대고
전화기가 진동으로 울었다. 새벽 네 시 십칠 분. 나는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보고 있었으므로 첫 울림에 손을 뻗었다. 액정에 뜬 이름은 ‘미자 이모’였다.
“지안아, 놀래지 말고 들으래이.”
첫마디부터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나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원룸 안은 캄캄했고,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다.
“니 엄마가, 어젯밤에 빙판에 자빠져가 골반을 뿌샀단다. 수술해야 된다 카는데, 니는 알고는 있어야 될 거 같애서.”
“네.”
나는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 이모는 내가 묻지도 않은 것을 마저 쏟아냈다.
“느그 엄마가 니한테 연락하지 말라꼬 그래 성화를 부리서, 내가 몰래 하는 기다. 알긋제? 내가 전화한 거 절대 말하모 안 된다.”
“네. 네, 이모.”
전화를 끊고도 나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손바닥에 남은 진동의 잔열을 느꼈다. 엄마가 넘어졌다는 말보다, 딸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그 말이 더 오래 가슴에 박혔다.
삼 년이었다. 명절마다 봉투만 부치고, 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놓쳐버린 척 전화를 내려놓던 삼 년. 나는 그 침묵을 효도라고 불러왔다. 바쁜 딸이 늙은 엄마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것, 돈을 부치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하는 것. 캄캄한 방 안에서, 그것이 효도가 아니라 도망이었다는 걸 처음으로 정직하게 인정했다. 나는 불을 켜지 않은 채 옷을 챙겨 입었다.
동대구행 첫차 안에서 나는 창에 이마를 붙였다. 서울을 빠져나가자 들판마다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유리는 차가웠고, 나는 이 기차가 내가 여태 도망쳐온 방향의 정반대로 달린다는 사실이 우스우면서도 무서웠다.
가방 안에는 밤새 붙들고 있던 원고 뭉치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 다음 주 넘겨야 할 교정지였다. 한 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코끝으로 냄새 하나가 밀려왔다. 이천오년 겨울,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밤에 골목을 메우던 연탄 연기. 매캐하면서 달큰한, 꺼지지 않으려고 밤새 타던 그 불의 냄새였다.
나는 그때 열두 살이었다. 이불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고, 문틈으로는 연탄가스와 겨울 바람이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서리 앉은 창에 이마를 댄 채 나는 처음으로 계산해보았다. 그해 겨울 엄마는 마흔다섯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그 어린 여자가 빚과 딸을 안고 연탄불 앞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낯선 사람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졌다.
병원에 닿았을 때 엄마는 이미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옮겨진 뒤였다. 승강기에서 내려 복도 끝까지 걷는 동안 소독약 냄새가 목을 조였다. 육인실이었다. 나는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커튼을 젖혔다.
낯선 노인이 누워 있는 줄 알았다. 마취가 덜 깬 얼굴은 부어 있으면서도 아이처럼 작았고, 반쯤 벌어진 입에서 얕은 숨이 새어 나왔다.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이 지나치게 말라 있었다. 저 사람이 내 엄마가 맞다고 알려주는 것은, 오른손등에 남은 오래된 화상 흉터뿐이었다.
나는 그 흉터를 어릴 때부터 알았다. 밥상을 차릴 때도, 내 손을 잡을 때도, 늘 거기 있던 우툴두툴한 자국. 사연은 몰랐다. 물으면 “데였다 마” 한마디로 문이 닫혔다. 나는 그것을 더 캐지 않았다. 캐지 않는 것이 편했으니까.
침대 곁 보호자 의자에 앉아 있던 미자 이모가 나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 이모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목소리를 낮췄다.
“왔나. 아직 잠들었다. 마취약 때매. 깨몬 아플 낀데.”
“수술은요.”
“잘됐단다. 뼈에 쇠 박았다 카더라. 걷는 거는 재활하몬 된다 카고.”
나는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 침대 발치에 그냥 섰다. 이모가 내 팔을 잡았다가 놓았다. 그 손도 거칠었다.
그때 엄마가 눈을 떴다. 초점이 흐린 눈이 천장을 더듬다가, 발치에 선 나에게 겨우 닿았다. 반가움도 놀람도 아니었다. 엄마의 첫마디는 핀잔이었다.
“머하러 왔노. 바쁜 사람이.”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나는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준비해둔 말이 아무것도 없어서, 튀어나온 것은 엉뚱한 물음이었다.
“밥은 드셨어요.”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꺼풀이 다시 무겁게 내려앉았고, 마른 가슴이 얕게 오르내렸다. 미자 이모가 혀를 차며 이불을 끌어올려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자자. 자야 낫는다.”
병실 형광등이 창백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침대 발치에 선 채로 엄마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저 흉터가 언제 어떻게 생긴 것인지 나는 여전히 몰랐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세월이 손등의 자국처럼 굳어 있었다.
갚아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난 사람처럼, 나는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엄마의 짐을 챙기러 옛집에 가야 한다는 것을, 그 집 장롱 밑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직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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