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 밤새 갈아야 한다16화 / 전 18화0

5부 남은 불

16화. 살아 있는 밑불

서지안


스무 해 전, 이 골목은 저녁이면 벽이 사라졌다. 집집마다 화덕을 문밖에 내놓아 걸어 들어가면 어느 집 연기인지 가릴 수 없는 한 덩어리 속을 지나야 했다. 나는 숨을 참고 그 속을 통과하곤 했다.

퇴원 사흘째, 엄마는 지팡이를 짚고 골목 초입에서 한참 서 있었다. 의사는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병실 침대에 사흘을 더 누워 있느니 죽는 게 낫다는 얼굴로 엄마가 신발을 신었으므로 나는 말리지 못했다. 지팡이 고무 끝이 언 바닥을 짚을 때마다 딱, 딱, 하는 소리가 났다.

“여가 참 안 변했네.”

엄마가 말했다. 실은 다 변했다. 나는 그 말을 고쳐주지 않았다.

순이네가 있던 자리에는 통유리 카페가 들어앉아 있었다. 통유리 안쪽으로 젊은 애들이 커피잔을 들고 서로를 찍었고, 우리 둘은 그 유리 앞에 멈춰 섰다. 유리에는 골목이 통째로 비쳤다. 지팡이를 짚은 엄마의 굽은 등도 거기 있었다. 나는 유리 속 그 등을 오래 보지 못하고 시선을 옆으로 밀었다.

엄마는 유리 안을 들여다봤다. 곱창을 굽던 자리에 지금은 에스프레소 기계가 김을 뿜고 있었다.

“여서 냄새가 골목 끝꺼정 갔는데.”

엄마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엄마가 서운해할까 봐 팔꿈치를 잡았다. 손끝에 닿은 팔이 생각보다 가늘었다.

“됐다 마.”

엄마가 픽 웃으며 팔을 뺐다.

“다 지 살길 찾아가는 기지. 커피가 곱창보다 돈이 되는갑다.”

엄마는 지팡이를 미자 이모네 쪽으로 돌렸다. 나는 잡았던 팔을 놓았다. 놓고 나서 그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미자 이모네 화덕은 골목 안쪽에서 여전히 벌겠다. 이모는 우리를 보자마자 집게를 머리 위로 흔들었다.

“아이고, 순례 니 살아 돌아왔나! 다리는 인자 걸을 만하나. 죽는 줄 알았드마는.”

“안 죽는다. 니보다 오래 산다.”

엄마가 이모 맞은편 플라스틱 의자에 지팡이를 걸치며 앉았다.

이모가 냉장고에서 곱창 한 소쿠리를 꺼내 불판에 쏟았다. 기름이 튀며 지글거리는 소리가 나고, 연기가 낮은 천장에 고였다가 우리 셋 위로 내려앉았다. 냄새가 순식간에 옷섶으로 파고들었다. 목덜미로, 머리카락 속으로, 소매 안쪽으로.

스무 해 전 나는 이 냄새가 배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교복에 밴 냄새 때문에 골목을 크게 돌아 학교에 갔고, 엄마가 새벽에 싸준 도시락을 등굣길 덤불에 버린 날도 있었다. 오늘은 그 냄새가 옷 속으로 스며드는 걸 그냥 두었다. 밀어내지 않고, 창가 자리로 옮겨 앉지도 않고. 나는 연기가 가장 잘 오는 화덕 쪽으로 오히려 몸을 조금 기울였다.

이모가 소주병을 땄다. 잔 세 개를 엎었다 바로 놓고 술을 채웠다.

“지안아, 니 니 엄마가 개업 첫날 곱창을 홀랑 다 태운 거 아나?”

“됐다 마, 그 얘기 또 하나.”

엄마가 핀잔을 줬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홀랑 다 태와가 손님상에 못 올리고, 그날 밤에 우리 둘이 다 뭇다 아이가. 근데 이 문디가 다음 날 또 화덕 앞에 딱 앉아 있는 기라. 손에 된장 처바르고, 헝겊 감고.”

이모가 낄낄대다 말끝을 흐렸다. 엄마는 소주잔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엄마의 오른손등을 봤다. 그 흉터의 내력을 이제는 안다. 개업 첫날이 아니라 그 뒤의 어느 겨울, 새벽에 연탄을 갈다 졸음 속에 손등을 눌러 데였고, 병원비가 아까워 된장만 바른 채 불판을 놓지 않았던 그 겨울을. 그 손등에 내 고등학교 첫 학기가 눌러쓰여 있다는 것을.

이모는 자기가 무슨 말을 꺼냈는지 알아차린 얼굴로 얼른 곱창을 뒤집었다.

“마이 익었다. 이거 무라.”

엄마가 잘 익은 곱창 한 점을 집어 내 앞접시에 놓았다. 기름이 아직 배어나오는 뜨거운 것이었다.

“마이 무라. 서울서 김밥만 뭇제.”

나는 젓가락을 든 채 잠깐 움직이지 못했다. 재작년 추석, 엄마 전화에 대고 밥 먹었다고 거짓말하면서 손에 든 건 편의점 삼각김밥이었다. 그날 통화는 채 일 분도 되지 않았다. 그런 밤이 몇 번이었는지 나는 세다가 그만두었다.

곱창을 씹었다. 뜨거워서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렸다. 오래 씹었다. 대답을 미루려고 오래 씹은 것이기도 했다.

“엄마.”

곱창을 삼키고 나서 말했다.

“나 당분간 서울 안 올라갈란다.”

엄마의 젓가락이 불판 위에서 잠깐 멈췄다.

“옳지! 잘 생각했다.”

이모가 소리치며 내 잔에 자기 잔을 부딪쳤다. 짠, 하는 소리가 좁은 가게에 크게 울렸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곱창을 뒤집었다. 집게 끝으로 한 점 한 점 자리를 바꿔놓았다. 이미 다 익은 것들이었다. 뒤집을 필요가 없는 것을 엄마는 자꾸 뒤집었다.

연기가 우리 사이로 올라왔다. 그 연기 너머로 엄마의 눈가가 붉어지는 게 보였다. 엄마는 그것을 연기 탓으로 돌릴 셈인 듯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나도 연기 탓인 척했다.

“눈매버서 그렇다. 화덕 앞에 오래 있으모 다 이렇다.”

엄마가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흉터가 있는 그 손으로.

이모가 다시 소주를 채우며 개업 첫해에 밑불 살리던 얘기로 넘어갔고, 두 사람은 누가 더 불을 못 다뤘네 하며 서로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 사람의 말을 다 따라가지 못한 채 곱창을 계속 집어 먹었다. 옷에 냄새가 배는 게 손끝으로도 느껴졌다. 소매에서, 목덜미에서, 머리카락에서 냄새가 났다.

집에 돌아가면 이 옷을 벗어 빨래통에 넣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밤은 아니었다. 오늘 밤은 이 냄새를 그대로 둘 생각이었다. 벗어서 의자에 걸어두면 밤새 방 안에 이 냄새가 고여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방에서 잘 것이다.

화덕에서 연탄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모가 집게로 아래 칸을 열더니 다 탄 연탄 위에 새 연탄을 얹었다. 구멍을 맞춰 눌러 앉히자, 아래에서 남은 불이 위로 옮겨붙기 시작했다. 벌건 기가 새 연탄 밑동을 서서히 물들였다.

“불 안 꺼짔제?”

엄마가 화덕 쪽을 넘겨다보며 물었다.

“안 꺼짔다. 밑에 살아 있다.”

이모가 대답하며 아래 칸을 닫았다.

나는 그 새 연탄에 불이 옮겨붙는 걸 오래 봤다. 엄마도 보고 있었다. 우리 둘이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걸 나는 옆얼굴로 알았다.

이 화의 별점·후기

아직 후기가 없어요. 첫 후기를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