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 밤새 갈아야 한다13화 / 전 18화0

3부 타는 것들

13화. 녹지 않는 눈과 감춰진 노트

서지안


미음이 반쯤 식은 채였다. 나는 그릇을 협탁 쪽으로 밀어두고, 무릎에 올려둔 노트 두 권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창밖으로 눈이 흩날렸다. 병실 유리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쌓일 마음이 없는 눈이었다.

“엄마.”

엄마는 숟가락을 쥐고 있었다. 물리치료를 마친 오후라 얼굴이 지쳐 있었고, 이마엔 아직 땀기가 남아 있었다.

“나 이거 다 읽었다. 장롱 밑에 있던 거.”

숟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국물이 한 방울 이불로 떨어졌지만 엄마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나는 평생 엄마의 얼굴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핀잔으로 애정을 감추던 얼굴, 밥은 뭇나 하고 묻던 얼굴. 그날 본 얼굴은 그 어디에도 없던 것이었다. 눈이 커지고, 입가가 굳고, 나를 보는 눈동자가 잠시 갈 곳을 잃었다.

“니가 그걸 와 읽노.”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그제야 나는 뭔가를 잘못 짚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 방에 위로를 가지고 내려왔다고 믿었는데, 그 위로가 엄마의 손에는 들춰진 이불처럼 쥐어진 모양이었다.

“그냥, 엄마 그 시절이 궁금해서.”

말끝이 흐려졌다. 엄마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이불귀를 움켜쥐었다. 손등의 흉터가 힘줄 위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니 보라고 쓴 거 아이다.”

엄마가 몸을 벽 쪽으로 틀었다. 수술한 다리를 옮기느라 얼굴이 일그러졌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도로 갖다 놔라. 지금 당장.”

건너편 침대의 노인이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리모컨을 눌러 볼륨이 한 칸씩 내려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6인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조여들었다. 커튼 너머에서 누군가 헛기침을 했고, 나는 그 소리에 목소리를 낮췄다.

“엄마, 나는 그냥 알고 싶었을 뿐이야. 엄마가 그때 어떻게 버텼는지.”

“됐다 마. 니가 뭘 안다고.”

딱 잘라 밀어내는 말이었다. 나는 침대 난간을 잡고 엄마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링거 줄이 팔뚝을 타고 흔들렸다. 벽을 보고 누운 엄마의 어깨가 가운 속에서 작게 오르내렸다. 나는 그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 멈췄다. 손바닥이 어깨 위 한 뼘쯤 되는 곳에서 허공에 떠 있었다.

“엄마, 화 풀어. 내가 잘못했다 치고.”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엄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불귀를 쥔 손이 조금 더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흉터 진 손등이 형광등 밑에서 번들거렸다. 스무 해 전 그 자리에 된장을 바르고도 화덕 앞을 뜨지 못했다던 손이었다.

“그 노트에 뭐 대단한 기 있는 줄 아나. 죽은 사람 넋두리 같은 거, 그런 거 읽어서 니 머리에 뭐가 남노.”

말은 밀어내는데 목소리 끝이 자꾸 갈라졌다. 나는 그 갈라진 자리를 붙잡고 싶었다. 붙잡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손을 도로 내렸다.

건너편 노인이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커튼 고리가 봉을 긁으며 스르륵 밀렸다. 누군가 우리 쪽을 보고 있다는 걸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목소리를 죽여도 다 새어 나갔다. 나는 목이 뜨거워지는 걸 참으며 한 박자 늦게 입을 뗐다.

“알았어. 안 읽은 셈 칠게.”

거짓말이었다. 이미 다 읽어버린 것을 안 읽은 셈 치는 방법을 나는 몰랐다. 엄마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등이 미세하게 굳었다. 엄마의 등이 나를 향해 있었다. 병원 가운 사이로 드러난 그 등판을, 나는 오래 보았다. 스무 해 전 개업하던 밤, 데인 손으로 화덕 앞에 쭈그려 연탄을 갈던 등이었다. 그때 그 등은 나를 향해 굽어 있었다. 지금은 나를 밀어내려고 돌아서 있었다. 같은 등이 방향을 바꾸는 데 스무 해가 걸린 셈이었다.

나는 갚으러 내려왔다고 생각했다. 삼 년 동안 미룬 것을, 부재중으로 죽여둔 전화들을, 편의점 김밥을 먹으면서 밥 먹었다고 한 거짓말들을. 그런데 노트를 읽고 그 시절을 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엄마에게 빚을 하나 더 얹은 셈이 되어 있었다. 갚기는커녕 이자가 붙었다.

나는 노트 두 권을 가방에 밀어 넣었다. 지퍼를 채우는데 손끝이 자꾸 미끄러졌다. 가방 밑에서 아직 펴지 않은 셋째 권이 두 권의 무게에 눌렸다. 그 모서리가 안쪽 천을 밀고 나온 자리가 손끝에 만져졌다. 나는 그것을 못 본 척했다.

“엄마, 나 갈게. 미음 다 식었다.”

대답은 없었다. 이불 밖으로 나온 어깨가 아주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다.

나는 협탁 위 미음 그릇을 한 번 더 밀어두고 가방끈을 어깨에 걸었다. 식은 죽에서 비린 쌀 냄새가 올라왔다. 문 앞까지 갔다가 나는 다시 돌아봤다. 엄마는 여전히 벽을 보고 있었다. 담요 밖으로 나온 발끝이 시렸을 텐데도 그대로였다. 나는 그 발을 이불 안으로 넣어주고 싶었다. 손을 뻗으면 또 밀어낼 것 같아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커튼을 젖혔다.

복도로 나오자 형광등 불빛이 하얗게 쏟아졌다. 병실 안의 어스름과 달리 복도는 그늘 하나 없이 환했고, 그 환함이 오히려 사람을 벗겨놓는 것 같았다. 소독약 냄새 밑으로 어디선가 곱창 익는 냄새가 스쳤다. 이 건물 어디에도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냄새를 맡았다. 코가 아니라 다른 데서 올라온 냄새였다.

나는 벽에 등을 붙이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무릎을 세우자 가방 속 셋째 권의 모서리가 허벅지를 찔렀다.

그제야 엄마가 왜 그 노트를 노끈으로 두 번 묶었는지 알 것 같았다. 왜 장롱 밑, 손이 잘 닿지 않는 가장 안쪽에 넣어뒀는지. 나는 그것을 엄마가 언젠가 나더러 읽으라고 남겨둔 것이라 여겼다. 유품처럼, 유언처럼. 그게 아니었다. 그건 나에게서 끝까지 숨기려던 것이었다. 보여주려던 게 아니라 감추려던 것이었다.

열두 살의 나는 개나리 덤불 속에 노란 도시락을 밀어 넣고, 학교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도시락을 엄마가 볼까 봐, 냄새가 밴 내 부끄러움을 들킬까 봐.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새벽마다 갈던 연탄과 된장을 바른 손등과 서문시장 좌판의 두 시간짜리 잠을, 엄마는 그 노트 속 이불 밑에 감추고 무덤까지 가져가려 했다. 우리는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이십 년의 간격을 두고, 서로 모르게, 같은 방향으로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

나는 가방 지퍼를 조금 열었다. 셋째 권의 검은 표지가 형광등 아래 드러났다. 손을 넣었다가, 다시 뺐다. 이걸 펴는 게 엄마의 이불을 한 겹 더 걷어내는 일인지, 아니면 내가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복도 끝에서 배식 카트가 덜컹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무릎을 조금 더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오래 앉아 있었다.

이 화의 별점·후기

아직 후기가 없어요. 첫 후기를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