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우산 하나의 폭
6화. 무너진 담의 초록
하루의 카메라는 손바닥만 한 은색 필름 기종이었다. 셔터를 감을 때마다 안에서 태엽 풀리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골목의 정적을 긁어내듯 작게 도드라졌다. 야마노테선을 타고 닛포리에서 내려 언덕을 하나 넘자, 도쿄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신주쿠에서 밤새 울리던 파친코도, 네온도 여기엔 없었다. 정오의 하늘은 어제 내린 비가 다 마르지 않은 것처럼 회색으로 눅어 있었고, 그 아래로 낮은 목조 지붕들이 어깨를 맞대고 이어졌다.
하루는 오래된 담벼락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반걸음 늦게 따라 서서 그녀가 무엇을 보는지 눈으로 좇았다. 골목 어귀엔 붉은 등을 단 두부 가게가 있었고, 그 앞 화분에서는 나팔꽃이 아직 다 오므리지 않은 채 걸려 있었다. 찍을 것이라면 저런 것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하루의 카메라는 두부 가게를 지나쳐, 한쪽이 무너져 이끼가 낀 담벼락 위로 향했다.
셔터 소리. 태엽 감는 소리.
다음은 골목 구석에 비스듬히 기운 자전거였다. 바퀴살이 녹슬어 붉게 삭은, 오래 세워둔 티가 나는 물건이었다. 그다음은 담 위에 배를 드러내고 늘어진 얼룩 고양이. 하루는 예쁜 것을 하나도 찍지 않았다. 성한 것도, 새것도 찍지 않았다.
“왜 자꾸 부서진 것만 찍어요.”
물음은 생각보다 먼저 입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 말끝에 뾰족한 것이 조금 섞여 있는 걸 스스로 알았다. 부서진 것을 오래 들여다보는 눈이, 어쩐지 내 쪽으로도 돌아올 것 같아서였는지도 몰랐다.
하루는 카메라를 내리지 않았다. 렌즈를 담벼락에 겨눈 채로, 천천히 말을 골랐다.
“예쁜 것은… 이미 다들, 봐요.”
셔터가 한 번 더 감겼다.
“이런 건, 곧 없어져요. 지금 안 보면… 못 봐요.”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곧 없어질 것. 지금 아니면 못 볼 것. 그 말은 이끼 낀 담벼락에 대한 것이었을 텐데, 내 귀에는 자꾸 다른 무엇으로 들렸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그때는 짚어내지 못했다.
그때 고양이가 움직였다. 셔터 소리에 잠이 깬 모양이었다. 앞발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다가, 담 끝을 딛는다는 것이 발을 헛디뎠다. 통통한 몸이 담 아래로 툭 떨어졌고, 착지하려던 뒷발마저 미끄러져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골목 흙바닥에 짧고 둔한 소리가 났다.
고양이는 잠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앞발을 들어 천천히 핥기 시작했다. 방금 넘어진 게 자기가 아니라는 듯, 위엄을 되찾으려 애쓰는 그 뻔뻔한 태도가 문제였다.
참으려 했는데, 참아지지 않았다.
“하하.”
배 속 어딘가에서 소리가 밀려 올라왔다. 짧았고 어색했지만, 분명히 웃음이었다. 도쿄에 온 지 닷새째, 나는 처음으로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웃음이 새어 나온 자리에 뜨거운 것이 얹혔다. 웃어도 되는 사람인가, 나는. 최종면접에서 여섯 번을 떨어진 주제에. 어젯밤에도 엄마 전화를 화단에 세워둔 채 흘려보낸 주제에. 지우지도 못하고 스마트폰에 그대로 품고 다니는 그 메일을 두고, 낯선 골목에서 고양이 하나에 이렇게 소리 내어 웃어도 되나. 나는 웃음의 끝을 얼른 손등으로 닦아냈다.
하루가 카메라를 내렸다.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것을 발견한 사람의 눈이었다. 신주쿠 교엔에서 우산을 씌워줄 때도, 커피를 밀어줄 때도 그녀는 나를 그렇게 오래 보지는 않았다.
“정우 씨, 지금… 웃었어요.”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시선을 돌렸다. 하루는 서두르지 않고, 조약돌 하나를 마저 얹듯 한국어 단어를 골라 덧붙였다.
“그 얼굴… 좋아요.”
좋아요, 라는 말의 끝이 흐려지지 않았다. 흐리게 말하는 사람이 그 한마디만은 또박또박 발음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감추려고 무너진 담벼락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제야 담이 왜 그녀의 눈에 담겼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무너진 자리에도 이끼가 앉아 있었다. 성한 담에는 없는 초록이었다. 부서진 데가 있어야 자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라고,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시 골목을 걸었다. 하루가 앞서고 내가 반걸음 뒤였다. 그녀의 가방이 걸음마다 옆구리에서 흔들렸는데, 벌어진 틈으로 안쪽에서 빳빳한 종이의 모서리가 언뜻 비쳤다. 스케치북이었는지, 접힌 무엇이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곧 없어질 것을 찍는다던 사람의 가방을, 함부로 들여다보면 안 될 것 같았다.
하늘은 여전히 마르지 않은 회색이었다. 어제 이 골목을 적신 비가 어딘가에서 다시 몸을 부풀리고 있을 터였다. 나는 손에 쥔 비닐우산의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접힌 채로 아직 펴지 않은, 이제 완전히 내 것이 된 값싼 우산이었다.
오늘은 비가 조금 늦게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골목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두부 가게도 하나 더 지나가야 했고, 하루가 다음에 무엇 앞에서 걸음을 멈출지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 도쿄에 와서 처음으로, 나는 무언가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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