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엔의 우산13화 / 전 18화9

3부 비가 그치기 전에

13화. 비를 맞는 우산 옆에서

정우


캡슐 천장의 형광등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스위치를 못 찾은 게 아니라,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 켜둔 채로 잤다는 걸 아침에야 인정했다. 그 무표정한 빛이 밤새 내 얼굴 위에 얹혀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본 것도 그것이었다.

방구석의 우산은 밤사이 조금 넘어져 있었다. 젖은 비닐이 마르면서 벽에 물자국을 남겼다. 살대 하나가 비닐 밖으로 삐져나와, 어제 세워둘 때 벽지를 긁은 자국이 얕게 파여 있었다. 하루가 금붕어 봉지만 안고, 자기 몫의 지붕까지 나한테 다 주고 떠난 우산이었다.

나는 그것을 들지 않고 방을 나섰다.

좁은 통로에서 신발을 신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설명하지 못한다. 젖은 손잡이를 쥐자 헐거운 손잡이가 손안에서 한 바퀴 헛돌았다. 데려가되 펴지는 않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캡슐 호텔을 나오자 거리는 어제 내린 비로 아직 축축했다. 아침 여덟 시가 조금 지났는데도 하늘은 저녁처럼 어두웠고, 구름이 빌딩 사이로 낮게 깔려 지붕들을 눌렀다. 출근하는 사람들은 벌써 손에 우산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편의점 앞 우산꽂이에는 나와 똑같은 비닐우산이 몇 개나 꽂혀, 젖은 채로 서로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손목에 건 채로 걸었다. 신주쿠 교엔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쯤이었다.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바짓단에 튄 흙탕물이 발목에서 식어갔다. 큰길을 벗어나 담을 따라 걷자 사람 소리가 줄고, 담 너머 나무들이 바람에 한쪽으로 쏠리는 소리만 들렸다. 비를 머금은 잎사귀들이 무거워 보였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비의 냄새가 먼저 코끝에 닿았다.

매표소의 노인은 이백엔을 받으며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오후에 크게 온답니다.”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표를 받아 든 손목에는 접힌 우산이 아직 걸려 있었고, 노인의 눈이 그 우산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음 사람에게 옮겨갔다.

닷새 전, 하루가 나한테 우산을 씌워준 그 잔디밭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날 우리는 나무 밑에 서 있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가려주지 않는 잔디 한복판에 배낭을 내려놓고, 그 위에 머리를 뉘었다. 풀은 아직 젖어 있어서 등이 금세 서늘해졌다. 배낭에 눌린 풀잎이 목덜미를 찔렀고, 몸을 조금 움직일 때마다 물기가 셔츠 안으로 배어들었다.

비는 예보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뺨에 한두 방울이 닿는가 싶더니, 셔츠가 등에 달라붙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잔디 사이로 물이 스미다 못해 고이기 시작했다. 짓눌린 풀에서 물큰한 냄새가 올라왔다. 흙에 뒤섞인, 여름의 끝을 지나며 상해가는 초록의 냄새였다. 등 밑으로 물이 차올라, 어느새 나는 얕은 웅덩이 위에 누운 꼴이 되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유모차 바퀴가 자갈을 구르는 소리, 매점 차양이 급하게 펴지는 소리, 아이를 부르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 다들 처마 밑으로, 큰 나무 아래로 흩어졌다. 잔디밭은 순식간에 비워졌고, 나만 그 한복판에 남았다. 우산은 배낭 옆에 그대로 눕혀둔 채였다.

빗물이 눈썹을 타고 흘러 눈으로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감으면 우는 것과 젖는 것을 따로 구분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뜬 채로 두었다. 하늘은 회색 한 겹으로 내려앉아 있었고, 그 위에서 빗줄기가 곧게 쏟아져 눈동자를 두드렸다.

여섯 번, 하고 나는 소리 내어 세어봤다. 입안으로 빗물이 들어왔다.

여섯 번 떨어진 게 회사였나. 면접관이었나. 아니었다. 매번 그 방에서 먼저 일어나 걸어 나온 건 나였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며칠이 무서워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내가 나를 떨어뜨렸다. 그게 무서워서 이 도시로 왔다. 여기서는 아무도 나한테 결과를 묻지 않았으니까.

빗물이 쇄골을 지나 가슴께로 흘러내렸다. 차가운 물줄기가 살갗을 하나하나 짚고 지나가는 동안, 어제 골목에서의 내 목소리가 떠올랐다. 하루가 비닐봉지 속 금붕어를 들어 보이며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물었을 때, 나는 봉지 안에서 힘없이 흔들리던 검은 꼬리 하나를 눈으로 가리켰다.

“그건 이름 지어봤자 며칠 못 가 죽어요.”

말해놓고 나는 하루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루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봉지를 다시 품으로 끌어당겼다. 나한테 우산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를 내주고, 자기 어깨는 다 젖은 채로 걷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다정함이 어색해서, 그게 나한테 과분한 것 같아서 먼저 가시를 세웠다. 상대가 나를 놓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미운 사람으로 만들어두면 덜 아플 줄 알았다. 빗물이 목덜미의 그 자리를 다시 지났다.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실패한 나를 버리고 싶었던 거네요.”

아무도 없는 잔디밭에서, 나는 하루한테 하듯 존댓말로 중얼거렸다. 문장을 입 밖에 내자 목덜미를 지나던 빗물이 잠깐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어깨가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젖어서 무거워진 셔츠 밑에서, 그것과는 다른 무게가 하나 빠져나갔다.

젖은 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물 묻은 손끝이 화면에서 자꾸 미끄러졌고, 빗방울이 액정 위에 맺혔다가 굴러떨어졌다. 여섯 달을 품고 다닌 메일이 빗방울 아래에서 흐릿하게 떠올랐다. 다시 읽지 않았다. 이미 다 외우고 있었으니까. 떨리는 엄지로 삭제를 눌렀다.

메일 하나가 목록에서 사라지자, 그 아래 있던 메일이 한 칸 위로 올라왔다. 나흘 뒤, 추가 채용 최종 면접. 그건 지우지 않았다. 지울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 둘의 차이를 아는 데 여섯 달이 걸렸다.

빗속에서 우산 쪽으로 손을 뻗었다. 헐거운 손잡이가 손안에서 다시 한 바퀴 헛돌았다. 그러나 나는 펴지 않았다. 우산은 접힌 채 내 옆에 누워, 제 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하나도 막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켰다.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다음 주에 가나자와로 떠나고, 나한테 남은 날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이었다. 그중 며칠은 이미 내 손으로 부숴놓았다. 젖은 잔디에 등을 붙인 채, 나는 그 골목으로 돌아갈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우산은 여전히 접혀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온몸으로 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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