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비가 그치기 전에
12화. 부서진 것을 확인하는 눈
봉지 안에서 검은 꼬리가 크게 한 번 몸을 틀었다. 물이 좁아서,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봉지 전체가 출렁였다. 하루의 손이 그 출렁임을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놓치지 않으려는 건지, 그 안의 것이 놀라지 않게 하려는 건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서 있었다.
나는 그 손을 보고 있었다. 어제 내가 며칠 못 갈 거라던 그 작은 것을 가슴께로 안아 든 손, 나 같은 놈한테도 봉지를 다시 내밀며 괜찮냐고 물어오던 손. 처마 밑에서 반 뼘 붙은 하루의 팔은 아직 미지근했고, 나는 그 온기가 견딜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정한 것이 다정할수록, 그게 곧 사라질 거라는 사실만 또렷해졌다.
“하루 씨는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내 목소리가 빗소리보다 낮게 깔렸다. 하루가 봉지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대답을 고르는 얼굴이 아니라, 질문을 잘못 들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왜냐면… 정우 씨니까.”
하루가 말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대답이 오히려 나를 찔렀다. 아무 조건도 없이 건네진 것이라서, 나는 그걸 받을 자리가 없었다.
“떠날 사람이 남을 사람한테 베푸는 거, 그거 편하잖아요.”
나는 골목 쪽으로 시선을 던진 채 말했다. 하루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안 볼 거니까. 다음 주면 가나자와 가는 사람이.”
빗소리가 얇은 처마를 그대로 통과해 우리 사이로 떨어졌다. 하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이 나를 더 몰아붙였다.
“이거 다 동정이잖아요. 실패한 놈 하나 불쌍해서.”
말이 다 빠져나가고 나서야, 나는 하루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아주 조용히 무너지는 걸 봤다. 소리도 눈물도 없었다. 그녀는 화를 내지도, 표정을 크게 바꾸지도 않았다. 다만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야나카 골목에서 무너진 담벼락을 찍을 때, 녹슨 자전거를 오래 들여다볼 때 짓던 그 눈이었다. 부서진 것을 부서졌다고 확인하는 눈.
하루가 캔버스 가방을 뒤졌다. 나는 스케치북이 나올 줄 알았다. 그녀가 꺼낸 것은 배낭에 넣어두었던 오백엔짜리 비닐우산이었다. 신주쿠 교엔에서 내 어깨를 겨우 가려주던, 이틀 내내 우리 둘 사이를 오간 그 얇은 지붕. 하루는 그것을 접힌 채로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럼… 이거, 정우 씨 거.”
그리고 금붕어 봉지를 가슴에 안은 채, 처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우산도 없이. 비가 곧장 그녀의 회색 셔츠에 내려앉아 어깨부터 색을 바꿔갔다. 나는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손끝이 저렸다. 봉지 안의 검은 꼬리가 그녀의 걸음을 따라 흔들리는 게,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보였다.
혼자 남은 처마 밑에서 나는 우산을 펴지도 않고 신주쿠 쪽으로 걸었다. 어제 하루와 어깨를 붙이고 서 있던 그 처마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부키초에 가까워질수록 젖은 아스팔트가 붉게 물들었다. 간판마다 켜진 네온이 물웅덩이에 번져, 발을 디딜 때마다 붉은 것이 깨졌다가 다시 고였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이 아까부터 그 색을 머금고 있었다. 라멘집 환풍구에서 돼지기름 냄새가 훅 끼쳐왔고, 어느 술집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취한 사람들, 호객하는 사람들, 우산을 펴고 바삐 걷는 사람들. 그 어디에도 나는 속하지 못했다.
손에 쥔 우산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틀을 이 얇은 지붕 하나에 기대 걸었으면서, 나는 그걸 준 사람에게 동정이라는 말을 던졌다. 손잡이 이음매가 벌써 헐거워져 접었다 폈다 할 때마다 덜컹거리던 이 값싼 것을. 서울 원룸 현관에 세워두고 온 낡은 우산이 문득 떠올랐다. 도쿄엔 비 맞을 일이 없을 거라고 믿었던 나. 정작 온몸이 젖고 있는 건 나였다.
편의점 유리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형광등 불빛에 비친 얼굴이 낯설었다. 나는 그게 여섯 번 떨어진 놈의 얼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방금 사람 하나를 밀어낸 놈의 얼굴이었다. 다정함이 오면 먼저 가시를 세우는 것, 손을 내밀기 전에 상대의 손을 쳐내는 것.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실패 전문가가 맞았다. 나는 취업에만 여섯 번 떨어진 게 아니었다.
캡슐호텔 217호로 돌아와, 젖은 우산을 좁은 침대 발치에 세워두었다. 물방울이 비닐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나는 그걸 한참 보다가 휴대폰을 켰다.
여섯 달 묵은 불합격 메일과, 나흘 뒤로 잡힌 추가 면접 메일이 나란히 떠 있었다. 두 줄 사이 어디에도 지금의 나를 설명해줄 말은 없었다. 돌아가야 할 이유와 남고 싶은 이유가 같은 화면 위에서 서로를 밀어냈다.
손잡이가 아직 축축했다. 손바닥에 그 물기가 옮겨 붙었다. 하루의 서툰 한국어가 귓속에서 자꾸 되감겼다. 그럼, 이거, 정우 씨 거. 단어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내려놓던 그 목소리. 나는 그녀가 다음 주에 가나자와로 떠난다는 걸 알면서, 이 도시에서 나한테 남은 며칠을 내 손으로 부숴버렸다.
검은 꼬리 금붕어가 그 흔들리는 기차를 견딜 수 있을지, 이제 물어볼 자격조차 없었다. 어제까지는 그 작은 것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 생각을 할 자리마저 스스로 없앤 셈이었다.
천장의 플라스틱 벽에 이마를 댔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팔을 뻗으면 손끝이 양쪽 벽에 닿는 이 방 밖에서 도쿄가 젖고 있었다. 하루도 어딘가에서 저 비를 맞고 있을 것이다. 우산을 나한테 다 주고 간 사람이. 나는 오랫동안 그 소리를 들었다. 내일 아침 눈을 떠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서울행 기차표를 끊을지 말지,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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