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엔의 우산10화 / 전 18화9

3부 비가 그치기 전에

10화. 상자 속의 두 줄과 금붕어

정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도쿄에서 내가 유일하게 알람을 맞추지 않은 날이 그날이었다. 하루와 아홉 시에 만나기로 해놓고도 나는 알람을 켜지 않았다. 몸이 알아서 깰 거라고, 어쩌면 깨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침 여섯 시, 217호의 얇은 벽 너머로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밀려왔다 물러갔다. 머리맡에 엎어둔 스마트폰이 짧게 두 번 몸을 떨었다. 나는 눈을 뜨지 않은 채 그 진동을 손끝으로만 더듬었다. 관 뚜껑처럼 코앞까지 내려온 칸막이 안에서, 세 번째 진동이 끊기기 직전에 화면을 귀에 붙였다.

“정우야. 살아는 있나. 발표는 언제 난다카노.”

엄마의 목소리는 부산에서 곧장 이 좁은 상자 안으로 들어왔다.

“곧요. 곧 나요.”

나는 천장을 보며 웅얼거렸다.

“밥은 묵고 댕기나. 언제 들어올 낀데.”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통화가 툭 끊겼다. 걱정을 그런 식으로밖에 내려놓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짧은 통화가 문틈 같다고 느꼈다. 아주 잠깐 열렸다가 닫혔는데, 그 틈으로 서울의 공기가 한 움큼 밀려 들어온 것이다.

전화를 내려놓기도 전에 화면 위로 알림 하나가 미끄러져 올라왔다.

추가 채용 최종 면접 안내.

나는 반쯤 일어난 자세로 굳었다. 메일함을 열었다. 여섯 달을 지우지 못한 채 품고 다닌 그 불합격 통보 바로 아래, 새 제목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위의 줄은 나를 밀어낸 문장이었고, 아래 줄은 그 문을 다시 열어주는 척하는 문장이었다. 두 줄은 계단이 아니라, 같은 문 앞에서 나를 두 번 세워두는 손이었다.

면접 날짜를 확인했다. 나흘 뒤. 나는 아직 편도 항공권만 끊어둔 채였다. 돌아가는 표는 사지 않았다. 도쿄에 오면 뭐라도 정리될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서울이 여기 이 상자 속까지 팔을 뻗어 내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지우면 되는 일이었다. 위의 메일도, 아래의 메일도, 엄지 하나로 밀어 지울 수 있었다. 나는 화면을 껐다. 어둠 속에서 벽 너머 코 고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화면을 켰다. 두 줄이 그대로 있었다. 다시 껐다. 다시 켰다. 그 사이 창도 없는 상자 안에서 시간만 지나갔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발밑에 세워둔 오백엔짜리 비닐우산이 커튼 사이로 흐릿하게 비쳤고, 나는 그것을 한참 노려보다가 배낭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캡슐에서 기어 나와 세수를 하고, 다시 앉았다가, 또 화면을 켰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동안 아홉 시가 지나고 열 시가 지났다. 나는 하루가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늦을수록 미안함이 커졌고, 미안함이 커질수록 발이 더 무거워졌다. 그건 하루에게 미안한 게 아니라, 나흘 뒤의 나에게 미안한 것이었다.

골목에 들어선 건 열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하늘은 낮게 가라앉아 회색으로 눌려 있었다. 아마야도리 처마 밑에 하루가 서 있었다. 어제 내가 건져 넘긴 검은 꼬리 금붕어 봉지를 두 손으로 감싸 든 채였다. 봉지 속 물이 그녀의 걸음에 맞춰 조금씩 흔들렸다.

“정우 씨, 괜찮아…요?”

그 서툰 한국어가 오늘따라 살을 파고들었다. 언제나 조약돌 하나 내려놓듯 건네던 말인데, 오늘은 그 조약돌이 유독 딱딱하게 부딪혔다.

“안 괜찮으면요.”

말해놓고 곧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늦잠 좀 잤다고 사람이 죽나요. 그리고 하루 씨는 뭘 그렇게 매번 괜찮냐고 물어요. 내가 안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나 보죠.”

하루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봉지를 살짝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얘… 살아 있어요.”

밤새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더 화가 났다. 어제 노점 앞에서 뜰채를 눕혀 건져 올린 그 작은 금붕어가, 미지근한 물 속에서 밤을 넘겼다는 게, 어쩐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 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어제는 우쭐대며 남의 생명은 건졌다는 게.

“그거 오래 못 살아요.”

나는 봉지를 보지 않고 말했다.

“축제 금붕어는 원래 며칠이면 다 죽어요. 물통도 없고, 밥도 없고. 괜히 기대 안 하는 게 나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하루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화를 내는 것도, 서운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처음으로 조금 다친 얼굴. 어제까지 부서진 것들만 골라 카메라에 담던 사람이, 지금 자기가 손에 든 작은 것 하나를 지키려다 다친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지금 화를 내는 상대는 하루가 아니라는 걸. 며칠이면 죽을 거라고 못을 박은 건 봉지 속 금붕어가 아니라, 서울로 돌아가면 일곱 번째로도 떨어질 거라고 이미 판결을 내려버린 나 자신이었다.

배낭 안에서 우산 손잡이가 등뼈를 눌렀다. 나는 그것을 빼내 하루에게 내밀지도, 펴지도 못했다.

킷사텐 문 안쪽에서 노인이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메다네.”

비가 오려는 것이다. 나흘 동안 나는 그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어딘가 안도했었다. 비가 오면 하루와 우산 하나 아래로 들어갈 구실이 생겼으니까. 오늘은 처음으로 그 비가 반갑지 않았다. 하루는 여전히 봉지를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흐려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꾸 대신 침묵을 골랐다는 것이 아까 내가 뱉은 말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봉지 속 물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검은 꼬리가 그 안에서 느리게 방향을 틀었다. 나는 이번에도 그것이 며칠을 버틸지 세어보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번엔, 세어보지 않는 이유가 어제와 달랐다.

첫 방울이 처마 끝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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