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0년
8화. 닫힌 문 너머의 서늘한 안도
“안 다쳤어?”
지운이 먼저 물었다. 나는 다치지 않았다. 조각은 내 발등에서 한 뼘쯤 떨어진 곳에 흩어져 있었고, 그중 하나가 슬리퍼 코 앞에서 형광등을 받아 잠깐 반짝였다.
그 접시는 결혼 삼 년 차에 산 흰 접시였다. 테두리 한쪽이 이가 나가 있었다. 언제 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며칠째 개수대 옆에 그대로 두고 있었다. 버리자니 아직 쓸 만했고, 다시 넣자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개수대 옆에는 늘 몇 개씩 있었다. 뚜껑 잃은 반찬통, 손잡이가 헐거워진 국자, 언젠가 고치겠다고 미뤄 둔 것들.
그날 저녁 지운은 설거지를 하다 그 접시를 씻어 다른 그릇 위에 겹쳐 올렸다. 물기 남은 그릇 위로 물기 남은 접시가 얹혔고, 미끄러졌다. 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접시 하나가 깨지는 소리치고는 너무 얌전해서, 나는 그게 정말 깨진 게 맞나 잠깐 의심했다.
“왜 하필 그걸.”
말은 거기서 멈췄다. 뒤에 붙이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도 몰랐다. 하필 그 접시를, 하필 오늘, 하필 당신이. 문장은 시작만 있고 끝이 없었다. 나는 끝을 삼켰다.
지운이 허리를 굽혀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나는 그 등을 봤다. 셔츠가 어깨선을 따라 팽팽하게 당겨졌고, 목덜미가 형광등 아래에서 조금 창백했다. 그 등을 보고 있으니 개수대 옆에 쌓여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버리지도 넣지도 못한 것들. 우리가 그 옆을 매일 지나치면서도 손대지 않은 것들.
“그냥 버리면 되는 걸 왜 자꾸 쌓아둬.”
지운의 목소리는 낮고 정확했다. 화를 낼 때조차 그는 단어를 골랐다. 조각 하나를 집어 손바닥에 옮기고, 다음 조각을 찾느라 잠깐 멈췄다.
“당신은 다 그렇게 정리하지. 깔끔하게.”
내 목소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차가웠다. 그 말이 접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우리 둘 다 알았다. 지운의 손이 멈췄다. 그는 조각을 쥔 채로 천천히 일어섰다. 손바닥 위에 흰 파편 몇 개가 얹혀 있었고, 그 모서리마다 빛이 서늘하게 걸렸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그가 나를 봤다. 삼 년, 아니 사 년 만에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보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 눈 앞에서 전부 꺼낼 수도 있었다. 안방 서랍 겨울 스웨터 아래 접어 둔 배냇저고리. 봄에 여동생 전화를 받고 베란다에 나가 꺼진 액정만 문지르던 뒷모습. 그리고 병원 복도, 자판기 커피가 다 식도록 그가 삼켜 버린 말. 나는, 이라고 시작만 하고 끝내지 못한 그 문장. 나는 십 년 가까이 묻지 않은 그것을 지금 이 부엌에서 물을 수도 있었다. 당신이 그날 하려던 말이 뭐였냐고. 왜 사탕을 꺼내려다 도로 넣었냐고.
입안에서 말들이 부딪혔다. 목까지 올라왔다.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됐어, 피곤해.”
그날 밤과 똑같은 문장이었다. 병원 복도에서 그의 말을 막았던 그 문장. 나는 이번에도 같은 문으로 그를 닫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날은 그를 위해 닫았다고 믿었고, 오늘은 나를 위해 닫았다는 것이었다. 그 차이를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지운은 나를 잠깐 더 봤다. 손바닥 위의 조각들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래. 피곤하겠지.”
그는 개수대 밑에서 신문지를 꺼내 조각을 쌌다. 접는 손이 느리고 정확했다. 신문지 모서리를 한 번 접고, 다시 접고, 흰 조각이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게 끝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접시 하나가 사라졌다. 왜 그것이 몇 년째 개수대 옆에 있었는지, 우리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가슴에서 무언가 올라왔다. 나는 그것이 분노일 거라고 생각했다. 접시에 대한, 지운에 대한, 이 집에 대한 분노. 그런데 아니었다. 그것은 안도였다.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삼킨 것을 다시 삼킨 채로 문을 닫아도 된다는, 서늘한 안도였다. 나는 그 사실을 그날 밤에는 인정하지 못했다. 등을 문에 기대고 서서, 밖에서 신문지 구겨지는 소리와 쓰레기통 뚜껑 여닫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물소리. 지운이 손을 씻고 있었다. 그 소리들이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불을 껐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을 때, 거실이 어두웠다. 소파 위에 지운의 담요가 개켜져 있었다. 반듯하게, 각을 맞춰서. 베개도 없이 담요만 접혀 있는 그 모양이 어쩐지 오래 준비한 사람의 것 같았다. 나는 화장실 문 앞에서 잠깐 서 있었다. 안방 문은 닫혀 있었고, 그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지운은 소파에서 자고, 나는 안방에서 자는 밤이 그렇게 시작됐다. 누구도 그것을 결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담요는 소파 위에 그대로 있었다.
개수대 옆 그 자리는 그 뒤로 비어 있었다. 접시가 놓여 있던 흰 자국조차 없이 깨끗했다. 나는 매일 아침 그 자리를 지나쳤다. 컵을 헹구고, 물을 받고, 행주를 널면서 그 빈 곳에 눈이 갔다. 무엇이든 하나 놓으면 될 일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빈자리를 비워 두는 것도 무언가를 두는 방식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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