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물과 기름
1화. 젖은 손과 마른 명함
국그릇 바닥에 눌어붙은 밥풀은 손톱으로 긁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스테인리스 대야에 두 손을 담근 채 그릇을 문질렀다. 고무장갑 안에서 손가락이 물에 불어터진 냄새가 났고, 배식대 옆 잔반통에서는 쉰 김칫국물과 참기름이 뒤섞인 냄새가 미지근하게 올라왔다. 정오를 넘긴 지하 식당은 한산했다. 형광등이 습기 찬 바닥에 뿌옇게 번졌고, 어디선가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찬송가가 배관 소리에 눌려 웅얼거렸다.
굽 낮은 구두 소리가 그 웅얼거림을 밟으며 다가왔다. 또각, 또각. 배식대 너머에 한수연 권사가 섰다.
“도현 형제, 손 그렇게 담그고 있으면 안 트여요?”
나는 얼결에 고무장갑 낀 손을 앞치마 뒤로 감췄다. 감춘다는 행동 자체가 부끄러워 곧바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진열장 안의 물건을 고르듯 나를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젖은 앞치마, 붉게 부어오른 손목, 이마에 붙은 앞머리. 그 시선이 훑고 지나간 자리마다 내가 무엇인지 값이 매겨지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손톱은 우윳빛으로 정갈하게 칠해져 있었다. 형광등 불빛을 매끄럽게 되받아 내는 그 광택을, 나는 내 붉은 고무장갑과 번갈아 보았다. 두 세계 사이의 거리가 손가락 몇 마디 안에 있었다.
“요즘 로마서를 혼자 붙들고 있는데.”
그녀는 성경 이야기를 브랜드 자랑하듯 나른하게 이었다.
“도현 형제가 신학교 준비했다고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고. 혼자 읽으니까 은혜가 안 되네.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나는 아직 개지 못한 접시들을 곁눈질했다. 봉사가 남았다는 말을 하려다 삼켰다. 대신 명치께에서 뜨거운 것이 부풀었다. 선택받았다는 감각이었다. 이 넓은 지하에서 젖은 앞치마를 두른 나를, 그녀가 굳이 골라 세웠다는 사실. 그 부풀음이 부끄러워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뭘 도와드릴 게 있을지…”
말끝이 흐려졌다. 신학교를 준비했다는 이력은 이제 등록금 앞에서 멈춰 선 채였고, 나는 그 멈춤을 남에게 설명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것을 꺼내 마치 자격증처럼 배식대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그 자격이 내 것인 양 잠시 우쭐했고, 우쭐한 스스로가 우스웠다.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핸드백에서 명함을 꺼내 배식대 마른 자리에 뒤집어 놓고, 볼펜으로 주소를 적기 시작했다. 글씨를 쓰는 동안 손목의 가느다란 시계가 손등 쪽으로 흘러내렸다. 금속의 얇은 무게. 나는 그것이 내 한 달 월세보다 무거우리라는 계산을 멈추지 못했다. 봉사하러 온 교회 지하에서, 나는 성경이 아니라 시곗줄의 시세를 셈하고 있었다.
“다음 주일 오후에 와요. 예배 마치고.”
결정적인 말을 그녀는 웃으면서 못 박았다. 그러고는 젖은 명함이 밥물에 번질까 봐, 손끝으로 조심스레 그것을 마른 자리로 밀어 주었다. 배려처럼 보이는 그 손끝의 움직임이 나는 왜인지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녀가 돌아서 나가자 구두 소리가 다시 찬송가 위로 또각또각 멀어졌다. 나는 고무장갑을 벗지도 못한 채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뒤집힌 앞면에는 그녀의 이름과 직함이 물기 없이 반듯하게 박혀 있었다. 권사. 그 두 글자가 이상하게 오래 눈에 걸렸다.
“야.”
재영이 건너편에서 마른행주를 던지듯 놓고 다가왔다. 목소리를 낮췄다.
“한 권사님이 너한테 뭐 주고 갔냐?”
나는 명함을 앞치마 주머니에 얼른 밀어 넣었다.
“성경 공부… 도와달라고.”
재영은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웃음을 거두고 나를 똑바로 봤다.
“성경 공부. 한남동에서.”
그 말끝에 붙은 짧은 침묵이 농담보다 무거웠다. 나는 대꾸 대신 대야의 물을 다시 휘저었다. 불어터진 밥풀이 뿌옇게 떠올랐다가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다. 재영은 더 캐묻지 않고 행주를 집어 배식대를 닦기 시작했지만, 그 등이 무언가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봉사를 마치고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젖은 손을 바지에 몇 번이고 문질렀다. 물비린내는 마르지 않았다. 손톱 밑에서, 손목 접힌 자리에서, 씻어도 다시 배어 나왔다. 그런데 주머니 속 명함만은 이상하게 뽀송했다. 밥물 한 방울 묻지 않은 그 마른 종이를, 계단을 오르며 나는 손끝으로 자꾸 확인했다.
고시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큼 좁았고, 발을 디딜 때마다 합판이 삐걱였다. 나는 그 좁은 층계참에서 우윳빛 손톱을 떠올렸다. 내가 정결해서 부름받았다고 믿고 싶었다. 세례 받은 청년, 신학을 꿈꾸던 형제, 그래서 로마서를 함께 읽자 청함받은 사람. 그렇게 믿으면 명치의 부풀음이 신앙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작 부풀어 오른 것은 신앙이 아니었다. 나는 그 복층 빌라가 몇 평일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창이 몇 개일지,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언덕이 어떤 모양일지. 물비린내 나는 손으로 뽀송한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내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것의 이름을 알아버렸다.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가난이었다.
방문을 열자 밀린 월세 고지서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밟지 않으려 조심하며, 명함을 책상 위 성경책 사이에 끼워 넣었다. 다음 주일까지는 엿새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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