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의 아침1화 / 전 33화5

1부 유리의 도시

1화. 샴페인 거품과 차가운 열쇠

서지운


“시리즈B, 백이십억.”

마이크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그 떨림을 흥분으로 읽었다.

“프리 밸류, 팔백이었습니다.”

루프탑이 소리로 채워졌다. 박수, 휘파람, 잔이 부딪히는 소리. 6월의 밤공기가 무겁게 데워져 있었고, 유리 난간 너머로 서울숲은 검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검음 위로 도시의 불빛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우리 밸류에이션처럼.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박수 소리를 나는 삼켰다. ATM 화면에 뜨는 숫자를 삼키듯이. 숫자가 곧 나였다. 팔백억. 그 밤의 나는 내 존재의 최대치였고, 나는 그 사실을 온몸으로 알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나는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오래된 쇠붙이 하나. 창업 첫 사무실, 상가 지하 그 방의 열쇠였다. 곰팡이 냄새가 벽지에 배어 있던 곳. 여름이면 습기가 발목까지 차오르던 곳. 나는 그 방을 벗어나려고 여기까지 왔다. 열쇠를 손바닥 안에서 굴리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여기까지 왔다. 봤냐.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나도 몰랐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손이 여러 개 나를 향해 뻗어 왔고, 나는 그 손들을 하나씩 잡았다. 명함이 오갔다. 다음 라운드, 밸류 방어, 상장 타임라인. 단어들이 샴페인처럼 튀었다.

민혁은 무대 아래 기둥 옆에 서 있었다. 맥주잔을 든 채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 웃는 얼굴이었는데, 웃는 것 같지 않았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은 그대로였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 그는 옥상 구석으로 나를 끌고 갔었다.

“지운아. 런웨이 늘어난 건 좋아. 그건 진심으로 좋아.”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화가 나면 낮아지는 목소리였다. 그날은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그 낮음이 나는 조금 거슬렸다.

“근데 이 밸류, 다음 라운드에서 우리 목을 조를 수 있어. 팔백을 찍어놨는데 다음에 이걸 넘기지 못하면 다운라운드야. 그럼 다 무너져.”

“민혁아.”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은 축배 드는 날이야. 계산은 내일 하자.”

그가 나를 잠깐 바라봤다.

“숫자를 축하하는 거야, 아니면 사람을 축하하는 거야?”

나는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잔을 들어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비우고는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파티에는 흘려들어야 할 말이 원래 많았으니까. 그게 로그처럼 어딘가에 저장되고 있다는 건 그때 몰랐다.

지금 그가 든 맥주잔은 처음의 그 잔인지, 새 잔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화답하려다 말았다. 다른 손이 내 어깨를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주머니에서 진동했다. 사무실 열쇠 옆에서. 나는 무대 뒤편으로 몇 걸음 물러나 화면을 봤다.

은수였다.

초대장을 보냈지만 답이 없던 사람. 오지 않은 사람.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축하해. 근데 당신, 오늘 자기 얼굴 거울로 본 적 있어?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무슨 뜻인지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알고 싶지 않았다. 거울. 나는 오늘 아침 넥타이를 매며 거울을 봤다. 잘 다려진 셔츠와 잘 정돈된 얼굴이 거기 있었다. 문제 될 게 없었다.

나는 화면을 껐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 내일 하자. 나는 다시 사람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늘은 축배 드는 날이었다.

그때, 창가 쪽에서 움직임 하나가 눈에 걸렸다.

한 사람이 의자에 걸쳐둔 코트를 챙기고 있었다. 파티는 아직 절정이었는데, 그는 혼자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여의도 투자사 심사역이었다. 낮에 텀시트 미팅에서 만난 사람.

그는 미팅 내내 조용했다. 다들 밸류를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은 태블릿을 넘기며 다른 걸 봤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그가 화면 하나를 내 쪽으로 돌렸다. 커머스 시장 성장률 그래프였다. 곡선의 끝이 완만하게 꺾여 있었다.

“대표님, 이 성장 곡선,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거 맞습니까?”

나는 웃었다. 그런 질문에는 웃는 게 답이라고 배웠다.

“곧 두 배 됩니다. 걱정 마세요. 이 팀이면 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는 끄덕임은 아니었다. 그냥 알겠다는, 그만 묻겠다는 끄덕임이었다.

지금 그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축하 인사도, 눈인사도 없이. 코트를 팔에 건 채 그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나는 잠깐 손끝의 감각을 잃었다. 주머니 속 열쇠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나는 얼른 다시 움켜쥐었다. 쇠붙이가 차가웠다. 손바닥 안이 축축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심사역 한 명이 먼저 갔을 뿐이다. 미팅은 열두 개나 잡혀 있었다. 브리지는 순조로울 거고, 시장은 다시 돌아올 거고, 다음 라운드는 팔백을 넘길 거였다.

누군가 내 손에 샴페인 잔을 쥐여줬다. 건배가 다시 돌았다. 잔들이 부딪혔다. 거품이 잔 밖으로 넘쳐 손등을 타고 흘렀다. 미지근하고 끈적한 감촉이었다.

나는 그것을 성공의 촉감이라 여겼다. 손등을 적신 그 축축함을. 나는 잔을 들어 올렸다.

그날 밤이 정점이었다는 걸, 그 넘친 거품이 내가 만질 수 있는 마지막 잉여였다는 걸,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때는 그저 잔을 비웠다. 서울숲의 어둠 위로 불빛이 여전히 촘촘했다. 나는 그 불빛을 세지 않았다. 셀 필요가 없다고 믿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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