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 하지 마요, 약속1화 / 전 19화12

1부 젖은 나무

1화. 흔들리는 손과 세는 아이들

서지원


모니터 알람이 길게 늘어진 건 새벽 세 시 십사 분이었다.

7번 침대였다. 여섯 살, 체중 십팔 킬로, 이틀 전부터 승압제를 달고 있던 아이. 나는 침상 난간을 내렸다. 난간이 걸쇠에 부딪히는 소리가 병실 끝까지 갔다. 아이의 가슴은 내 두 손을 다 얹기에 좁았다. 흉골 아래 삼분의 일에 손꿈치를 대고 다른 손을 포갰다.

손은 판단보다 먼저 움직였다.

“세 시 십사 분, 압박 시작합니다.”

내 목소리였다. 분당 백 회. 나는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아이의 흉곽은 얇아서 반동이 손목까지 그대로 올라왔다. 열둘 열셋 열넷. 조하늘이 앰부백을 짜고, 간호사가 에피네프린 앰플의 목을 꺾었다. 유리가 딱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스물 스물하나. 나는 숫자를 세면서 숫자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서른 번째에서 손목이 제멋대로 굽었다.

깊이가 얕아진 걸 모니터보다 내 팔이 먼저 알았다. 다음 압박에서 팔꿈치가 접혔고, 그다음에는 어깨가 따라 흔들렸다. 나는 팔을 폈다. 펴지지 않았다.

“선생님.”

조하늘이 내 옆구리를 밀었다.

“제가 할게요.”

나는 반 박자 늦게 “어” 하고 물러섰다. 물러서는 동작만은 이상하게 매끄러웠다. 발이 미리 그 자리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반걸음 뒤로 물러섰고 다시 반걸음 옆으로 비켰다. 조하늘이 난간을 짚고 올라서서 아이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압박 파형이 다시 규칙적으로 섰다.

나는 장갑 낀 손을 가운 옆에 붙이고 섰다. 손끝이 라텍스 안에서 미끄러웠다. 그 상태로 서서, 나는 내 떨림에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이건 양심이다. 아무 감각 없이 누르는 인간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 문장을 속으로 두 번 굴리는 동안 세 번째 에피네프린이 들어갔다.

세 시 사십일 분에 자발순환이 돌아왔다.

조하늘의 이마에서 땀이 턱 끝으로 떨어져 아이의 시트에 번졌다. 그 애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다가 나를 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활력징후를 부르고 채혈 오더를 냈다.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목소리는 늘 평소와 같았다.

그때 고개를 커튼 쪽으로 돌렸다.

6번 침대의 커튼이 한 뼘쯤 열려 있었다. 백유안이 베개에서 머리를 들지도 않은 채 눈만 뜨고 있었다. 그 애는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손을 보고 있었다.

나는 커튼을 닫으러 갔다. 손잡이 대신 커튼 천을 쥐었는데, 쥐고 나서도 닫지 못했다.

“자야지.”

유안은 눈을 깜빡였다. 산소 카뉼라가 콧등에서 조금 밀려 있었다. 내가 손을 뻗어 그것을 바로 걸어주는 동안, 그 애는 또박또박 말했다.

“선생님 손, 아까 흔들렸어요.”

병실 저쪽에서 인공호흡기 알람이 짧게 울렸다가 꺼졌다.

안 흔들렸어, 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열기만 했다. 카뉼라를 걸던 손을 거두려는데, 유안이 이불 밖으로 손을 빼서 내 손목을 잡았다. 여덟 살 손아귀는 힘이 없었고, 대신 정확했다. 엄지가 손목 안쪽 맥이 뛰는 자리에 얹혔다.

“여기요.”

“유안아.”

“지금은 안 흔들려요.”

그 애는 손목을 잡은 채로 자기 모니터를 힐끗 봤다. 심박 백이십이, 산소포화도 구십사. 숫자를 읽는 데 익숙한 아이였다. 입원 사흘째부터 회진 때마다 자기 수치를 먼저 말하는 아이였다.

“아까는 서른 번까지 셌어요.”

나는 손목을 빼지 못했다.

“뭘 셌어.”

“선생님이 누르는 거요. 하나부터 셌는데, 서른 번째에서 소리가 달라졌어요. 앞에는 툭툭 하다가 거기서부터 톡톡 했어요.”

유안이 손을 놓고 베개 아래를 뒤졌다. 접힌 A4 낙서지가 나왔다. 지난 주말에 자원봉사자가 나눠준 색연필로 그린 것들이었다. 뒷면에는 볼펜으로 그은 세로 작대기가 다섯 개씩 묶여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이건 알람 울린 횟수예요. 여기까지가 어제, 여기부터가 오늘.”

“세지 마.”

“세면 안 돼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유안은 종이를 뒤집어 그림 쪽을 내밀었다. 침대 하나와 사람 하나가 있었고, 사람의 팔이 침대 쪽으로 뻗어 있었는데 손 부분에 손가락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동그라미 두 개로 끝나 있었다.

“이거 선생님이에요.”

“손이 없네.”

“손은 아직 안 그렸어요.”

그 애는 종이를 다시 접어 베개 아래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며 물었다.

“저 누를 때도 흔들려요?”

나는 반 박자를 놓쳤다. 두 박자를 놓쳤다. 그동안 내가 한 일은 유안의 이불 끝을 매트리스 아래로 밀어 넣는 것과, 침상 난간을 올려 걸쇠가 걸리는지 두 번 확인하는 것이었다. 여덟 살짜리 앞에서 거짓말 한마디를 못 고르고 서 있는 동안, 유안은 기다리다가 그만두었다.

“알겠습니다.”

그 존댓말이 젖은 종이처럼 손등에 들러붙었다. 그 애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아래가 한 번 움직였다. 나는 커튼을 끝까지 닫았다. 레일이 끝에서 딸깍 걸렸다.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물컵을 들었다가, 물이 흔들리는 걸 보고 그대로 내려놓았다. 컵 바닥이 데스크에 닿는 소리가 났다.

한여순 선생이 기록지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나를 보지 않았다.

“3년 됐지, 너.”

“이번 달로.”

“코드 몇 번 들어갔어, 그동안.”

나는 세어보지 않았다고 대답하려다 말았다. 한여순 선생은 3년 전 그 밤에도 저 자리에 있었다. 기록지를 넘기는 손이 멈추지 않았다.

“세어봤는데 모르겠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고, 안 세어봤다고 하면 그건 더 거짓말이야.”

“열두 번입니다.”

“그중에 몇 번 교체됐어.”

볼펜 소리가 잠깐 멈췄다. 나는 물컵 표면에 남은 손자국을 봤다.

“오늘 처음입니다.”

“그래.”

한여순 선생이 딸깍 볼펜을 닫았다. 그 사람은 기록지를 덮고 일어서면서, 그때 처음으로 나를 봤다.

“손 떠는 애들은 대개 자기가 착해서 떠는 줄 알아.”

“선생님.”

“착한 거랑 얕게 누르는 거는 아무 상관 없어. 아이 갈비뼈는 네 양심 봐주고 부러지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종이타월을 두 장 뽑았다.

“7번 보호자 아침에 온다니까 설명 준비해 놔. 어젯밤 압박 몇 분 했는지는 네가 알겠지.”

한여순 선생이 나가고 나서 조하늘이 들어왔다. 수술용 캡을 벗은 자리에 머리가 눌려 있었다. 그 애는 코드 기록지를 내 앞으로 밀었다.

“선생님, 시행자 란에 제 이름만 쓰면 되나요.”

“왜.”

“제가 중간에 받았으니까요. 앞부분은 선생님이라서.”

나는 기록지를 끌어당겼다. 압박 시작 03:14, 자발순환 회복 03:41, 시행자 란에 조하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위쪽 빈칸에 내 이름을 적어야 하는지 잠깐 들여다보다가, 볼펜을 놓았다.

“네 이름으로 둬.”

“그래도.”

“그게 사실이잖아.”

조하늘은 뭔가 더 말하려다가 인계 노트를 챙겨 나갔다.

여섯 시가 지나고 창밖이 회색으로 변했다. 인계 노트를 반쯤 쓰던 참에 스테이션 내선이 울렸다. 원무과였다.

“서지원 선생님이시죠. 이른 시간에 죄송합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조정 신청서가 접수돼서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나는 볼펜을 쥔 채로 들었다.

“환자분 성함이 강복수 님이고요. 3년 전 12월 건입니다. 신청인은 아드님 강인호 씨로 돼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한 장, 또 한 장.

내 손끝에 그날 병상 걸이에 끼워져 있던 종이의 감촉이 돌아왔다. 코팅되지 않은 A4 한 장, 위쪽 모서리가 접혀 있었고, 하단에 볼펜이 눌린 자국이 뒷면까지 배어 나와 있었다. 3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밤이 종이 한 장이 되어 원무과 창구 위에 놓이고 있었다.

“선생님?”

“네.”

“진료기록 사본 발급이랑 경위 확인 때문에 오늘 중으로 한번 내려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6번 침대 쪽에서 커튼이 조금 흔들렸다. 유안의 모니터 심박이 백이십에서 백십오로 내려앉았다. 나는 수화기를 어깨에 끼우고 인계 노트의 마지막 줄을 마저 썼다. 글씨가 평소보다 눌려 있었다.

“몇 시까지 가면 됩니까.”

내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떨리는 건 늘 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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