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 밤새 갈아야 한다10화 / 전 18화0

3부 타는 것들

10화. 노트에 적히지 않은 새벽

서지안


골목은 스무 해 동안 한 뼘씩 줄어든 것 같았다. 프랜차이즈 간판이 두 집 걸러 하나씩 붉게 켜졌고, 순이네가 있던 자리엔 통유리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나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미자 이모네는 골목 끝에서 두 번째, 예전 그 자리였다.

저녁 손님이 빠진 홀은 반쯤 어두웠다. 이모는 나를 보자마자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며 나오더니 홀 한켠 낡은 평상에 나를 앉혔다.

“왔나. 앉아라, 여 앉아.”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 소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들고 나와 평상에 툭 내려놓았다. 병뚜껑을 비트는 손이 두꺼웠다. 앞치마에는 기름 얼룩이 배어 있었는데,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이모 배에 늘 있던 그 얼룩과 같은 자리였다. 얼룩만은 늙지 않았다.

나는 엄마 얘기가 듣고 싶어 왔다고 말하려다 그만두고 그냥 잔을 받았다. 화덕에서 올라온 연기가 천장 아래 낮게 깔려 흔들리지도 않았다.

“고관절이 그기, 노인들 한번 뿌사지모 잘 안 붙는다카던데.”

이모가 내 잔에 소주를 채우며 먼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병을 내려놓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니 엄마가, 참 독한 사람이라.”

나는 그 말이 칭찬인지 원망인지 몰라 잔만 만지작거렸다. 이모는 자기 잔을 반쯤 비우고 나를 한번 훑더니, 결국 참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

“니는 모를 끼다. 가게 문 닫고 열두 시 넘으모, 니 엄마 그 길로 서문시장 갔다 아이가.”

“서문시장을요.”

“새벽 좌판 자리 하나 얻어가꼬. 나물이고 콩나물이고 다라이에 담아 놓고 팔았다. 곱창 냄새 폴폴 나는 옷 그대로 입고.”

나는 잔을 입에 대다 말고 이모를 쳐다봤다. 그런 얘기는 일기 어디에도 없었다. 여백에 눌러쓴 숫자들, 이자와 월세와 연탄값, 그 밑에 두 번 눌러쓴 네모 칸. 나는 그 노트를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모의 입에서 나온 두 시간은 노트에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 얘기는, 노트에 한 줄도 없었어요.”

“노트에 뭐를 쓰노. 잘 새도 없었을 낀데.”

이모가 잔을 내려놓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한번 훔치는데, 웃으려다 실패한 얼굴이었다.

“니 학교 갈 때쯤 되모, 니 엄마 자는 척 딱 하고 누워 있었다. 니 나가고 나모 그때 두 시간 자고, 또 일어나가꼬 화덕 불 갈고. 그래 살았다.”

두 시간. 나는 그 말이 목에 걸려 소주가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방앗간 쪽으로 돌아 학교에 가던 그 아침마다, 엄마는 자는 척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가 곤히 잔다고 믿었다. 믿고 싶어서 믿었다. 냄새가 싫어 돌아가는 길에, 나는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니한테는 죽어도 말하지 말라 캤다. 지안이 알모 큰일 난다고, 나한테 신신당부를 했다 아이가. 지안이 신경 씨서 공부 못한다꼬.”

이모가 다시 잔을 채웠다. 이번엔 자기 잔에만 채웠다.

몰랐다는 것이 나를 봐주는 게 아니었다. 알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알고 싶지 않아서 방앗간 쪽으로 돌아갔던 것이고, 알고 싶지 않아서 서울에서 전화를 늦게 받았던 것이다. 몰랐기 때문에 편했고, 편했던 만큼 죄가 깊어졌다. 면죄가 아니라 이자가 붙는 종류의 죄였다.

“이모.”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그게 부끄러워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왜 나한테 진작 말 안 했어요.”

이모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 잔을 비우고, 빈 잔 바닥을 평상 위에 몇 번 돌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니 엄마가 하지 말라 카는데 우예 하노. 그 성질에.”

그러고는 나를 오래 봤다.

“근데 인자는, 니가 알아도 될 것 같아서. 니 엄마 저래 누웠는데, 우리 죽고 나모 아무도 모를 거 아이가.”

골목 어딘가에서 쇳소리가 났다. 연탄집게가 화덕 안쪽을 긁는 소리, 다 탄 아래짝을 들어내고 새것을 앉히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한 번, 두 번 이어졌다. 나는 그 소리를 눈으로 좇듯 골목 쪽 어둠을 봤다.

엄마도 저 소리를 냈을 것이다.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나, 아직 어둑한 화덕 앞에 쭈그려 앉아, 데인 손으로 아래짝을 들어냈을 것이다. 밑불이 죽지 않게, 아침 장사 전에 다시 벌겋게 달아오르게. 그 소리가 스무 해 전 새벽마다 이 골목을 채웠고, 나는 이불 속에서 그 소리를 자장가처럼 듣고 다시 잠들었을 것이다. 엄마가 이미 일어나 있는 줄도 모르고.

이모가 내 잔에 남은 소주를 마저 채워주었다. 나는 잔을 들었지만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골목의 쇳소리가 그치자 연기 냄새만 진하게 남았다.

옛집 장롱 밑에 아직 한 권이 있었다. 그 안에는 이모가 방금 말한 두 시간이, 서문시장의 새벽이, 노트에도 못 옮긴 채 지나간 밤들이 어떻게 적혀 있을까. 아니면 그것들도 다른 오후처럼 지워진 채, 아무것도 아닌 얼굴로 눌러쓰여 있을까.

나는 그 권을 언제 가지러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오래도록 잔을 내려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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