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확인 기일
1화. 탄 빵의 냄새와 서늘한 나무 도장
천장에 얼룩이 있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다. 오년째 같은 자리에 번져 있는 그 얼룩을 나는 눈을 뜨자마자 찾았고, 그것이 어제와 같은 모양으로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오늘이 왔다는 걸 알았다.
옆방에서 물소리가 났다. 지운이 먼저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그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샤워기 물줄기가 타일에 부딪는 소리, 잠깐 물이 멎었다가 다시 쏟아지는 소리. 그가 비누칠을 하느라 물을 잠근 순간이라는 걸 나는 소리만으로 알았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화장실을 겹치지 않게 쓰는 법을 익혔다. 각방을 쓰기 시작한 뒤로 유일하게 손발이 맞는 일이 그거였다. 물소리가 그치고, 문이 열리고, 슬리퍼가 복도 장판을 끄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방문을 열었다.
복도 공기가 아직 뜨듯했다. 지운이 데워 놓은 물의 김이 화장실 문틈으로 새어 나와 있었다. 세면대 거울에 김이 절반쯤 남아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손자국 하나 없이 닦여 있었다. 지운은 씻고 나면 늘 거울을 닦아두는 사람이었다. 배려인지 결벽인지, 십 년을 살고도 나는 그걸 구분하지 못했다. 오늘도 구분하지 못한 채 남은 김 위로 내 얼굴이 흐리게 비쳤다. 나는 그 흐린 얼굴을 잠깐 마주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거울 아래 선반에 그의 칫솔이 물기를 머금은 채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 내 칫솔이 있었다. 두 개의 칫솔이 나란히 꽂혀 있는 컵이 오늘따라 눈에 걸렸다.
찬물을 틀었다. 물이 손끝을 때리는 감각이 정신을 앞질러 도착했다. 나는 그 물로 얼굴을 씻으며 오후에 할 일을 순서대로 세웠다. 법원 도착, 접수 창구, 판사 앞에서의 확인, 그리고 집으로 오는 버스. 일정으로 만들어 두면 견딜 만했다. 수건으로 얼굴을 눌러 닦고, 나는 습관처럼 손바닥으로 거울의 김을 훔쳤다. 그러다 손을 멈췄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이 거울을 누가 닦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반쯤 닦다 만 김을 그대로 두고 화장실을 나왔다.
부엌에서 탄내가 옅게 올라왔다. 지운이 토스트를 굽고 있었다. 접시 위에 두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게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인 게 잠깐 걸렸다. 그는 토스터에서 막 튀어나온 빵을 손끝으로 집어 접시에 옮기고 있었다. 뜨거운지 손가락을 짧게 털었고, 그런데도 다시 집어 가지런히 놓았다. 한 장의 가장자리를 접시 안쪽으로 살짝 돌려 태운 면이 덜 보이게 하는 그 손짓을, 나는 문가에 선 채로 지켜보았다.
“먹고 가.”
그가 접시를 식탁 끝으로 밀며 말했다. 나를 보지 않았다. 접시가 식탁 모서리에 닿아 작게 긁히는 소리가 났다.
“안 넘어가.”
나는 봉투를 옆구리에 낀 채로 대답했다. 지운은 버터 나이프를 든 채 잠시 멈췄다. 그는 늘 단어를 고르느라 멈추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뭐라도.”
문장을 끝맺지 못하고 접었다. 십 년 전이었다면 나는 그 멈춤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가 고른 단어가 무엇일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지금은 궁금하지 않았다. 그 습관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는 걸, 나는 식탁 위 토스트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맡으며 알았다. 가장자리가 조금 탄 빵이었다. 버터가 아직 녹지 않고 한쪽에 얹혀 있었다. 지운은 나이프를 접시 위에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어정쩡한 손이 내가 무슨 말이든 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나는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탄내가 부엌에 얇게 깔렸고, 그 냄새가 나를 부엌 밖으로 밀어냈다.
방으로 돌아와 서류 봉투를 다시 열었다. 협의이혼 의사확인신청서, 신분증, 그리고 인주와 함께 넣어둔 도장. 손바닥에 굴려 보았다. 나무 손잡이가 손때로 매끄러웠다. 인면에는 내 이름 세 글자가 거꾸로 파여 있었다. 서인혜. 뒤집힌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게 내 이름이 아닌 것 같았다.
혼인신고를 하러 가던 날 아침, 지운이 코트 주머니에서 이걸 꺼내 내밀었다. 새로 판 나무 냄새가 났었다.
“당신 이름은 획이 많아서, 파는 아저씨가 애먹었어.”
그는 그 말을 농담처럼 하지 않았다. 아주 진지한 얼굴로 했다. 그래서 나는 웃을 타이밍을 놓쳤고, 웃지 못한 채로 도장만 받았다. 그날 손바닥 위에서 도장은 아직 미지근했다. 도장집 아저씨가 방금 인면을 다듬어 넘겨준 온기가 나무에 남아 있었고, 지운의 주머니 안에서 그 온기가 채 식지 않은 채였다. 나는 그 미지근함을 손바닥으로 한참 쥐고 있다가 가방에 넣었었다.
지금 내 손 안의 도장은 서늘했다. 그 도장으로 오늘 이 결혼을 끝낸다. 봉투 입구를 접다가 나는 손을 멈췄다. 이 사실이 특별히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다는 게 이상했다. 그 이상함에 닿는 데에도 한 박자가 걸렸고, 나는 그 한 박자만큼 도장을 손에 쥐고 있다가 봉투에 넣었다.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지퍼를 닫는 소리가 방 안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현관에서 지운이 코트를 걸치는 소리가 났다. 옷걸이에서 코트를 빼는 소리, 팔을 꿰는 소리, 옷깃을 정리하는 소리. 그다음에 아주 작은 소리가 하나 더 났다.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비닐 봉지가 접히고 그 안에서 딱딱한 것들이 서로 부딪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십이 년 동안 들어왔다. 그의 코트 주머니에는 언제나 그것이 들어 있었다. 극장에서도, 병원 대기실에서도, 장거리 버스에서도 그는 그 봉지를 열어 알사탕 하나를 내게 건넸다. 오늘도 그가 그걸 챙겼다는 사실이, 도장을 넣을 때보다 나를 더 오래 붙잡았다.
가방을 들고 방을 나섰다. 지운은 현관에서 등을 보인 채 신발을 신고 있었다. 몸을 숙여 구두 뒤축에 손가락을 넣는 그의 코트 오른쪽 주머니가 살짝 불룩했다. 나는 그 불룩한 자리를 보다가, 신발장 위에 놓인 내 구두를 내려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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